새 정부의 성장 드라이브 정책에 일단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4개국 경제신문 인터뷰에서 “성장보다 물가 안정이 우선”이라고 밝힌 탓이다. 이에 따라 성장 드라이브에 기반을 둔 금리 인하론, 환율 상승 용인론 등은 당분간 힘을 잃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렇다고 성장을 최우선시 하는 ‘MB노믹스’의 근간이 바뀌었다고 보긴 힘들다. 급한 불(인플레 압박)이 잡히고 나면, 언제든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진단이다.
새 정부 들어 대내외 환경은 사실 금리 인하에 무게를 실었었다. 미국의 잇단 정책금리 인하로 한ㆍ미 양국간 금리 차가 두 배 이상 벌어졌고, 이명박 정부의 성장 우선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가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한국은행도 정부 정책에 협조해야 한다”고 밝혀온 것도 힘을 보탰다.
하지만, “성장 대신 물가”라는 이날 대통령의 교통 정리는 상황을 일단 바꿔 놓았다. 24일 채권시장에서 시중금리는 큰 폭 상승했다. 지표물인 국고채 5년물 금리는 지난 주말보다 0.11%포인트 급등하며 연 5.32%까지 치솟았다.
환율 하락 등 여건 변화도 한 원인이지만, 대통령의 발언이 결정적이었다. 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새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에 적극 나설 것이란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며 “하지만 주말 대통령의 발언으로 당분간 금리 인하는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시중금리를 끌어 올렸다”고 말했다.
시장은 이제 “당분간 금리 동결”에 확신을 갖는 모습이다. 물가를 희생하며 금리 인하를 하기도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성장을 완전히 포기하며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낼 수도 없을 것이란 해석이다.
환율 역시 가파른 상승 기조에서 일단 벗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은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반면, 수입물가 상승으로 국내 물가를 끌어 올리는 부작용이 우려돼 왔다.
이 대통령이 최근 “환율 상승이 물가 상승 요인이 된다”고 발언한 데 이어, 물가 우선 정책을 펼 것을 주문하면서 이날 원ㆍ달러 환율은 1,000원 밑으로 다시 떨어졌다. 정부가 당분간 수입물가 상승 우려 때문에 환율 상승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기는 힘들 것이란 인식이 확산된 탓이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힘들다. 자칫 욕심을 부리다 성장도 놓치고 물가도 놓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임시 처방일 뿐, 기본 인식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경기 상황에 따라 정부가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는 있다지만,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부 정책의 진폭이 너무 커지지는 않을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 정부가 지고 있던 ‘6% 성장’ 부담의 무게를 다소 덜기 위한 의도를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영어 몰입 교육 정책을 뒤늦게 번복한 것처럼, 대외 환경의 어려움을 감안해 성장률 목표에서 한 발 물러서기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