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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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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

입력
2008.03.24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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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존스턴 지음ㆍ변학수 등 옮김글항아리 발행ㆍ735쪽ㆍ2만8,000원

클림트는 관능 속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았고(1916년 <죽음과 삶> ), 쉴레는 말라 비틀어진 육체에 똬리 틀고 있는 음침한 욕망을 보았다(1914년 <팔꿈치를 오른쪽 무릎에 대고 앉은 여자> ). 도시의 화려함도 부르주아 계급의 불안을 다 감출 수는 없었다.

잘 발달된 국가 기구는 관료들의 견고한 성채일 뿐이었다. 세기말의 불안 속에서 20세기를 향해 팡파르를 울리고 있던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지식인들은 늘 다른 세계를 꿈꿨다. 지성은 왜 당대와 불화하고, 불온한 꿈을 꾸는가를 밝힌 방대한 사유서가 곧 이 책이다.

15세기 유럽인 콜럼버스는 미지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다. 이후 신대륙(미국)은 눈부신 물질 문명에도 불구하고, 구대륙(유럽)에 대해 지적 열등감을 항상 내장해 왔다.

20세기 메사추세츠 대학의 역사학 교수 윌리엄 존스턴은 유럽이 지성적으로 가장 풍염했던, 그러나 사회와 권력 구조는 불안정했던 세기말의 오스트리아를 방대한 정보량으로 되살렸다. 예술사와 지성사가 조화를 이룬 역사서로 그 빚을 갚은 셈이다.

책은 하나의 의문을 집요하게 파고 든 결과다. “왜 오스트리아가 이룩한 광채는 망각, 아니면 심지어 악명 속으로 빠지게 됐던가?” 책은 그래서 사라진 아틀란티스 대륙 탐험을 지성사적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 셈이다. 프로이트, 브렌타노, 후설, 비트겐슈타인, 루카치, 카프카, 말러, 슘페터, 켈젠, 클림트, 바그너….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 이들 천재 모두가 있었다. ‘문화 대국 오스트리아’라는 상투적 표현이 그래서 나왔다.

전통적 사조와 현대적 사조들이 전례 없이 얽히고 접합돼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던 1848~1918년의 합스부르크 제국은 그들 사상가를 배태했다. 현대성의 열쇠를 쥔 사람들이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 밀집돼 있었던 것이다.

사회의 풍경은 놀랄만큼 일률적이었다. 왕가를 상징하는 장식, 똑같은 관료들에 의해 시스템은 작동되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체코어, 폴란드어, 마자르어(헝가리)를, 지식인들은 독일어를 쓰던 그 곳은 탈출구 잃은 유럽의 축도였다.

책은 당대가 이룬 예술적ㆍ학문적 업적을 소설처럼 펼쳐 보이며, 지식인들의 행태에 집중한다. 현대성이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밝히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들이 펼치는 정신의 풍경은 이념사, 사상가의 사회학, 참여 지식인들의 사회학 등의 렌즈로 재구성된다. 관료 혹은 마르크시스트의 길을 택한 경제학자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도 제공한다.

또 하나, 세계를 막후에서 틀어쥐고 있는 유태인들이 역사의 전면에 부각됐다는 점도 당시를 주목케 한다. 강한 결속력과 지적 우수성, 축재 능력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유태인 사회에서 프로이트, 후설, 비트겐슈타인, 말러, 카프카 등 유태인 이론가와 예술가들의 활동 축이 개방적 풍토가 강했던 빈이었던 것이다.

빈 사람들의 애증이 공존했던 프로이트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헝가리인들 역시 타민족에 대한 우월감에다, 자신의 영광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겉돌기는 마찬가지였다.

풍속사를 보는 듯한 정치한 묘사, 종교와 정치 등 당대 상황에 대한 객관적 정보 등 기존 역사 서술 방식의 관점에서도 책은 풍성하다. 무엇보다 문학적이고 치밀한 묘사는 700여쪽을 쉽게 넘기는 책의 다음 페이지를 재촉하는 힘이다. “그(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먹는 속도가 매우 빨라서 대다수 손님들은 맛있는 요리를 즐길 겨를이 별로 없었으며, 반밖에 못 먹고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66쪽)

저자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더 획일화 돼 가고 있는 현대에 대해 요청한다. “지적 다양성이 사라질 위기에 있는 시대에, 불과 두 세대 전의 사회적 조건들이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통합적 사고를 꽃피우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연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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