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23일 공천 파동을 둘러싼 장군 멍군의 공방으로 하루종일 어수선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먼저 회견을 열고 공천 파동을 "속았다"는 표현까지 동원, 강하게 비난하며 강재섭 대표 등 지도부에 책임을 물었고, 다섯 시간 뒤 강 대표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총선을 보름 앞두고 한나라당이 집권여당 사상 전례 없는 내홍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박 전 대표의 화살은 당초 이명박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강 대표를 향해 날아갔다. '밀실공천 회귀'라는 날선 비판을 쏟아낸 박 전 대표는 "당 대표와 지도부가 정치개혁에 대한 철학과 의지가 없고 무능해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곧장 강 대표를 겨냥했다.
박 전 대표가 예상과 달리 이 대통령이나 이재오 의원을 직접 건드리지 않은 것은 청와대와 이 의원의 공천개입이 설만 난무할 뿐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때문인 듯 하다. 아울러 필요 이상으로 전선을 확대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대신 공천의 공식 책임자이자 청와대와의 연결 고리인 강 대표를 공격함으로써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에 도전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으로 그 효과를 거두는 '외곽 때리기'를 한 것이다. 이 대통령에 대해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이라는 우회적 심경 피력으로 불만의 여운을 남겼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일체의 총선 지원유세 없이 자신의 지역구에만 머물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렇게 되면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 깊은 영남 민심은 무소속 친박연대 출마자들 쪽으로 기울 수 있다.
강 대표의 불출마 선언은 "나도 희생했으니 이제 그만 하자'는 메시지로 공천 파동이 총선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을 진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자기희생을 통한 이미지 높이기의 전략도 깔려 있는 듯 하다.
2004년 총선 때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대신 당 의장으로 선거를 이끌어 과반 승리를 일궈내면서 승승장구한 사례를 벤치마킹한 측면도 있는 것이다. 만약 당내 분란이 강 대표의 불출마 카드로 수습쪽으로 가닥을 잡고 영남권의 무소속 돌풍을 가라앉는다면 이런 시나리오는 충분히 현실성을 갖는다.
그러나 강 대표의 불출마 선언이 민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 전 대표측 관계자는 "강 대표의 불출마에도 불구하고 안타깝지만 박 전 대표가 지적한 무원칙한 공천과 구태회귀의 문제점은 여전하다"며 "불출마로 이런 문제들까지 덮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내홍의 불길이 확산하느냐, 잦아드느냐. 박 전 대표의 호소와 강 대표의 불출마가 팽팽히 맞서면서 한나라당의 진로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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