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영중 지음예담 발행ㆍ344쪽ㆍ1만3,000원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의 대표작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의 한 장면.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인공 드미트리에게 수염을 잡아채이는 모욕을 당한 가난한 퇴역장교 스네기료프의 오두막으로 드미트리의 약혼자인 카테리나가 위로금 200루불을 들고 찾아간다. 까라마조프의>
200루불은 스네기료프가 몇년 동안 구경도 못해본 엄청난 돈. 어쩔줄 모르고 황송해 하던 스네기료프는 돌연 지폐를 구기고 구두 뒷축으로 짓밟으며 이렇게 울부짖는다. “치욕의 대가로 당신들의 돈을 받는다면 내가 우리 아이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그러나 실상 그 지폐는 하나도 손상되지 않았다. 스네기료프가 실제로 돈을 짓밟지 않고 밟는 척만 했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내면에서 맞부딪히는, 자존심을 유지하려는 욕구와 돈을 가지고 싶은 욕구의 줄다리기를 이렇듯 절묘하게 묘사한다.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거장의 문학세계와 인생을 지배한 것은 한 마디로 ‘돈’이었다고 규정한다.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 로부터 <죄와 벌> <백치> 까지 작가의 관심은 돈의 문제였다. 그의 소설을 추동하는 것은 돈-치정-살인이지만, 이 같은 3중 모티브중 가장 막강한 것은 돈이었다는 것이다. 백치> 죄와> 가난한>
푸슈킨(1799~1837) 같은 작가가 “우매한 군중아, 입을 다물라. 먹고 사는데 급급한 품팔이 노예들아”를 외치고, 톨스토이(1828~1910)가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있을 때 반드시 가난한 사람의 편을 들어주는 등 당대의 작가들이 돈에 대한 전근대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것을 갈망하면서도 내놓고 그것을 갈망한다고 말하지 않는, 돈에 대한 사람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포착했다.
그리고 그것은 작품 곳곳에서 돈과 자존심, 돈과 범죄, 돈과 평등, 부와 가난, 돈과 자유의 관계, 자선의 의미 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나타난다. 저자는 그것이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현대성’을 담보한다고 결론내린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라는 책의 제목은 중의적이다. 그가 돈을 주제로 한 작품을 썼다는 의미와 함께, 늘 궁핍하게 살아야 했던 작가의 실제적 삶을 다뤘다는 사실도 함축하고 있다. 돈을>
원고지 여백에 쓰여진 숫자가 모두 원고료의 액수였다는 것, 늘 돈에 쪼들려 선불창작을 일삼으면서도 원고료를 받자마자 즉시 호화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당구를 치느라 돈을 날려버렸다는 것, 돈이 없어 대작가의 자존심을 구기는 원고료를 받으면서도 돈만 생기면 주위 사람들에게 기분이 좋아서, 혹은 기분이 나빠서, 혹은 아무 이유도 없이 턱턱 썼다는 이 위대한 작가의 인간적 면모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석 교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위대함은 이토록 통속적인 소재로부터 세기를 뛰어넘는 사상과 예술을 빚어냈다는 것”이라며 “돈이 주는 강력한 힘의 위력과 한계를 모색하는 것도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읽는 한 가지 재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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