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녀(7세, 6세, 3세)를 둔 홍모(41ㆍ무직)씨는 2006년 11월 사채업자 방모(45)씨 사무실에 갔다가 '몇 달 동안 아이들을 서류상으로 입양을 시키면 1명 당 1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듣고 귀가 솔깃해졌다. 홍씨는 식당에서 일하는 아내 몰래 자녀들을 김모(40ㆍ무직)씨에게 입양했다.
김씨는 이미 수고비 2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몇 달 동안 다른 사람 자녀를 입양하기로 방씨와 약속한 상태였다. 김씨는 홍씨 자녀를 입양하자마자 방씨 지시에 따라 경기 동탄 신도시 아파트의 '다자녀 무주택 자녀 대상 특별분양'을 신청해 당첨됐다. 김씨는 방씨 소개로 알게 된 부동산중개인을 통해 분양권을 판 뒤 홍씨 자녀들을 파양(양자 관계를 끊는 것) 했다.
홍씨는 이후 또 한번 입양을 하려다 적발됐고, 홍씨 아내는 "자식을 돈벌이에 이용했다"며 이혼을 요구한 상태다. 더구나 홍씨의 두 자녀는 아직 파양이 되지 않아 법적으론 '남의 자식'이 된 상태다. 홍씨는 경찰 조사에서 "몇 달 동안 서류로만 입양한다고 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지 몰랐다"며 고개를 떨궜다.
정부가 출산 장려를 위해 2006년 도입한 '3자녀 특별분양 제도'를 악용, 아이를 허위 입양해 아파트를 분양 받게 한 다음 이를 되팔아 거액을 챙긴 일당이 처음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23일 장기 무주택 세대주에게 어린이를 가짜로 입양시켜 아파트를 특별분양 받게 한 뒤 분양권을 팔아 5억원 가량의 부당 이익을 챙긴 혐의(주택법 위반 등)로 한모(45)씨 등 부동산ㆍ입양 브로커 15명을 검거, 한씨를 구속하고 방씨 등 1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남의 자녀를 허위 입양 받아 아파트를 특별분양 받고 분양권을 팔아 넘긴 김씨 등 19명, 자녀를 허위 입양한 홍씨 등 부모 20명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씨 등 브로커들은 노점상 등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접근, 아이 1명당 100만~1,000만원을 주고 이들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입양시켰다. 또 무주택 세대주에게도 1인 당 100만~2,000만원을 주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허위로 입양하게 했다.
브로커들은 입양을 통해 자녀수가 증가한 무주택 세대주들에게 경기 동탄, 인천 송도, 서울 은평뉴타운 등 신도시 아파트 21채를 특별분양 받도록 한 뒤 이를 11채를 되팔게 해 4억8,000여 만원을 챙겼다.
이들은 정부가 2006년 8월부터 신규 분양 주택의 3%를 미성년 자녀를 3명 이상 둔 장기 무주택 세대주에게 특별분양토록 한 규정을 악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분양 배점표에 총점 100점 중 무주택기간 등 다른 요소는 10~20점에 불과하지만 자녀 수 배점은 50점이나 되고, 특히 6세 미만 어린이는 1명 당 5점이 가점돼 비중이 크다는 점을 노렸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국토해양부(옛 건설교통부)가 특별분양 신청자의 제출 서류만 검토할 뿐, 내용 검증을 하지 않는 점을 이용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특히 사건 최대 피해자인 어린이의 가족관계등록부(옛 호적)에는 입양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초등학교 입학 등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어린이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입양, 파양 기록이 끝까지 남는다"며 "구청에 입양 신청서만 내면 간단히 신분 확인만 하는 입양 절차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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