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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달러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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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달러의 수난

입력
2008.03.2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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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갑부 슈퍼모델’로 소문난 브라질의 지젤 번천이 지난해 11월 미국의 자존심을 정면에서 긁었다. 프록터앤갬블(P&G)사의 팬틴 헤어용품 새 모델로 선정되고 돌체앤가바나(D&G)사와는 향수 신제품의 홍보 계약을 맺으면서, 모델료를 달러가 아닌 유로로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녀의 매니저이자 쌍둥이 자매인 패트라샤 번천은 노골적으로 “달러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어서…”라고 말했다. 당시엔 해외토픽같은 얘기였으나, 유로 대비 달러 가치가 10% 이상 떨어진 지금, 자신의 몸값을 지킨 그녀의 예지력이 놀랍다.

▦ 비슷한 시기에 인도의 대표적 관광명소인 타지마할 사원 매표소에는 ‘달러 사절’이라는 안내문이 나붙었다. 달러 당 50루피를 넘었던 환율이 39루피까지 떨어져 수입이 급감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여행 카페나 블로그에는 “달러는 이제 잊어라”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올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헤지펀드의 대부인 조지 소로스는 “2차 대전 이후 지속됐던 달러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말해 뉴스의 인물이 됐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전에 이미 ‘달러의 수난’을 동물적으로 예감한 셈이다.

▦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 영국의 파운드 대신 세계 기축통화의 자리를 꿰차며 ‘팍스 달러리움’ 시대를 연 달러의 신세는 갈 곳 없는 누추한 노인을 연상케 한다.

중동 산유국들은 공공연히 석유 결제통화를 유로 등 다른 통화로 바꾸는 일을 꾸미고, 달러에 자국통화 가치를 연동시킨 페그제를 폐지하는 국가가 늘어나며, 암스테르담 등 유럽 주요 관광지에선 소액 환전상들도 달러를 기피한다. 달러의 금 태환을 중지한 1971년 스미소니언 체제나 85년 달러화의 인위적 절하를 끌어낸 플라자합의 등의 격변기에도 겪어보지 못했던 굴욕이다.

▦ 최근엔 달러가 ‘와타나베 부인(Mrs. Watanabeㆍ저금리의 엔화를 빌려 해외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 주부투자자의 속칭)’의 사냥감 목록에 올랐다고 한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사태를 맞아 달러자산을 청산해오던 이들이 달러값이 충분히 떨어졌다고 판단해 다시 입질에 나섰다는 것이다.

세계 금융시장에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돈은 40조엔 안팎. 그 영향인지 달러값은 주말을 전후해 모처럼 반등했다. 아줌마들의 힘은 국적을 불문하고 무섭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서브프라임 쓰나미를 몰고온 월가의 도덕적 해이마저 덮어 버리는 달러의 위세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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