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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도쿄의 멋없는 대형 빌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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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도쿄의 멋없는 대형 빌딩들

입력
2008.03.2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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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창학 150년을 맞는 일본 게이오(慶應) 대학 근처는 크고 작은 회사 사무실이 모여 있는 오피스가다. 이 대학 동문(東門) 앞으로 이어지는 작은 상점가에 두부가게가 하나 있다. 빌딩들이 문을 열기 전 이른 아침 물 뿌려진 가게 앞을 밟고 그날 만든 두부를 사가는 동네 아주머니의 모습을 쉽게 만난다. 도쿄(東京) 곳곳에는 이렇게 일과 삶이 어우러진 정감이 있다.

일본 상점가의 ‘감초’ 같던 두부가게가 사라지고 있다. 고도성장의 시동을 걸던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3,000개에 이르던 도쿄의 두부가게가 지금은 950여 개로 줄었다. 원료인 대두 값이 자꾸 올라 기업식 대량생산 두부를 당해낼 재간이 없는 데다 두부가게를 이어서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것이 이유라고 한다.

■ 도시경관 바꾸는 대형 재개발

대량에 대형이 경쟁력의 보증수표인 것은 도쿄나 서울 같은 대도시에선 불문가지다. ‘도시 재생’을 앞세운 고이즈미(小泉) 정권의 규제 완화 덕분에 2000년을 전후해서 도쿄가 도심부 재개발 열기에 들뜬 데는 도시 경쟁력 확보라는 의식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

도쿄만에 인접한 시오도메(汐留)를 시작으로 록폰기힐스, 마루노우치, 미드타운 등 도심 곳곳에 40, 50층의 초고층 빌딩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도쿄의 경관이 변해가고 있다. 그리 많지 않던 도심 고층 아파트도 상업시설의 뒤를 좇아 확산일로다. 고층 빌딩이나 아파트를 도심의 명물로 반기는 도쿄도민이 적지는 않다. 관광 명소가 돼 외국인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건물이 늘 환영만 받는 건 아니다. 개발과정에서 원거주민과 생기는 갈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방영된 일본 드라마 <아버님께 삼가 아룁니다> 는 메이지(明治), 다이쇼(大正) 시절 고급 관료 거주지였고 전통음식점과 요정이 몰려 있던 신주쿠(新宿)구 가구라자카(神樂坂)에 고층 아파트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한 축이다. 도시 개발을 두고 생겨나는 이런 갈등을 소재로 하는 일본 드라마나 영화가 낯설지 않다.

게이오대 교수인 건축가 구마 겐고(隈硏吾)는 최근 낸 <신ㆍ도시론tpkyo> 에서 시오도메, 마루노우치, 록폰기힐스 등 도쿄의 명물을 직접 거명하면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본 국철 화물역 부지에 세운 시오도메는 ‘인터넷에서 쇼핑을 하거나 창업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점포로 발걸음을 옮기는 시대에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가게들이 잔뜩 모인 상업시설’이라고 비판 받는다. 시오도메처럼 넓은 광장과 저층의 대규모 상업시설, 초고층 빌딩의 삼위일체는 미국 록펠러 센터가 대변하는 성장형 사회의 산물이지 일본 같은 성숙형 사회에 걸맞은 건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 전통미와 삶의 정취 어울려야

심벌인 모리(森) 타워를 중심으로 총면적 11.6㏊의 록폰기힐스는 참신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주변 주택가와 형태적으로 불연속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건축에 들어간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임대료가 비쌀 수밖에 없었고 결국 가진 자들만 들어가는 ‘도쿄의 신기루’가 됐다.

높은 빌딩만 잔뜩 세워서는 도쿄도, 서울도 상하이(上海)의 추진력을 이길 수 없다. ‘성장’이라는 목표만 좇는 ‘우등생’ 도시보다 전통미와 역사가 이어지고 삶의 정취가 묻어나는 도시를 만들려는 고민이 필요하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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