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히말라야의 이상향, 부탄왕국이 위태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위험의 근원은 민주화다.”
24일 실시되는 부탄의 사상 첫 총선거를 계기로 1907년 이후 절대왕정을 고수해온 ‘은둔의 왕국’이 근본적인 변화의 길에 접어들었다.
부탄은 이번 총선을 통해 입헌군주국으로 탈바꿈하고, 올해 말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등 민주화, 개방화를 진행 중이다. 이웃나라 네팔이 국민의 요구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민주화’에 나선 것과 달리 부탄은 왕이 적극적으로 민주화를 선택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2006년 사망한 4대왕 지그메 싱계 왕추크는 2005년 입헌군주제로의 변화를 발표했다. 이어 즉위한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신 지그메 케사르 왕추크 현 국왕이 지난해 4월 모의 총선을 실시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거쳐 드디어 민주화의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이번 선거에는 전직 총리들이 이끄는 2개 당이 47개 의석을 놓고 선거전을 벌이고 있는데,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당의 당수가 총리가 돼 실질적으로 부탄을 통치하게 된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은 이 같은 선거 민주화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선거가 도입되면 방글라데시나 인도, 파키스탄, 네팔처럼 폭력이 빈발하고, 정부가 부패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부탄 왕립연구소측은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해온 부탄의 사회체계가 상호 비방적인 선거유세로 인해 혼란을 겪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배우자가 불교사원에 불법적인 기부를 했다는 이유로 한 후보가 고발됐다고 전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왕족만 사용할 수 있는 노란색이 선거포스터에 사용됐다고 해서 논란이 이는 등 선거전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주에는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네팔민족 과격단체 등이 저지른 것을 보이는 3건의 폭탄테러까지 발생했다. 선거 당일 전국 투표소에는 5,000여명의 경찰과 군 병력이 배치될 예정이다.
인구 75만명에 교통신호등 하나 없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은 경제발전보다는 전통문화와 자연환경 보존을 중시하는 균형발전을 추구하면서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한 대안으로 관심을 모아왔다. 특히 국민총생산(GDP)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개발한 국민총행복(GNH) 지수를 국정운영의 중요한 척도로 사용하면서, GDP 기준으로도 지난 10년간 연평균 7%의 탄탄한 경제성장을 이뤄 GNH를 세계의 발명품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다.
카르마 치팀 부탄 국민총행복위원회 위원장은 “민주화와 대외 개방에 맞춰 GNH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대외 개방을 통한 경제활성화와 부탄의 고유문화 계승 사이에서 적절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정영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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