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경선 이후 직장인들과 간담회도 했고, 대선 과정에서 일반인들의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이제는 공무원 봉급도 옛날처럼 박봉이 아닙니다. 그런데 매년 수천억원, 올해부터는 1조원이 넘는 국민세금을 공무원연금 보전하는 데 쓰는 게 말이 되나요.
수년 전부터 개정하느니 어쩌니 했고, 전임 장관도 안을 만든다 연구용역을 줬다 하여 금방 되는 듯 했는데, 아마 지금까지 제대로 계획조차 세워져 있지 않을 것입니다. 원세훈 (행정안전부)장관, 이것부터 꼭 챙기세요."
만약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대통령, 지지부진 공무원연금개혁 질타'와 같은 제목이 신문과 방송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공무원연금에서도 전봇대가 뽑힐 것인가' 등의 해설과 논평이 이어졌을 것이다.
장관은 벌써 ΟΟ위원회 구성을 발표했고, △△공청회 일정을 잡을 게다. '대불산단의 전봇대'도 그렇게 뽑혀 나갔고, 그러한 실용ㆍ행동주의가 이명박 정부의 마스코트 아닌가. 이것이 현 정부에 대한 국민지지가 한때 80%까지 올랐던 이유다.
■ 대통령의 의지와 관심이 관건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원 장관이 당시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6월 중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정부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한 정도의 소식을 접했을 뿐이다. 물론 대통령의 질타나 관심표명은 전해지지 않았다. 장관도 자신의 '야심과 포부'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했다. 다만 4월 중에 시안을 마련해 관계부처 협의를 거친다는 '계획과 방침' 정도가 알려졌을 뿐이다.
공무원연금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왜 개혁되지 못하는지 국민은 다 안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이해(?)를 바탕으로 이미 지난해 7월 혜택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수정됐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책임졌던 참여정부의 장관은 취임 당시 "국민연금 개혁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개혁하겠다"고 공언했으나, 국민연금이 개혁된 후에도 "개혁안 마련 중"이라거나 "위원회에서 연구 중"이라고 피해 다니다 임기를 끝냈다.
어렵고, 힘들고, 일부의 반발이 우려되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새 정부 초기에 매듭지어야 한다. 새 대통령과 새 장관에 대한 긴장과 기대감은 취임과 함께 매일 1%씩이라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왕 해야 할 일인데 그때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 조치들은 모두 새 정부 초기에 대통령의 각별한 의지로 이뤄졌다.
김영삼 정부가 감행한 하나회 제거와 금융실명제 실시가 그랬다. 김대중 정부는 IMF 극복을 위해 금융ㆍ재벌ㆍ정부ㆍ노동 4대 개혁을 내걸었다. 철옹성과 같았던 금융권과 재벌기업에 대한 개혁이 성공했던 것은 정권교체가 이뤄진 직후였기에 가능했다. 조금 미뤘던 정부ㆍ노동개혁은 지금도 그대로다.
노무현 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이 도저히 손대지 못할 것으로 여겼던 불필요한 검찰의 권위는 "한 번 해보자는 거지요"라는 신임 대통령의 한마디로 깎여 나갔다.
하나회 제거와 금융실명제 실시, 금융ㆍ재벌개혁, 검찰의 과잉권위 해체 등은 연관된 집단의 거센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해 뜨거운 감자처럼 여겼던 사안이었다.
다만 해야 할 일이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고, 공감대는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기대감의 근원이었다. 국민적 공감대와 기대감 앞에서 기득권을 줄여야 하는 일부 이해당사자들의 반발과 불만은 왜소해지지 않을 수 없다.
■ 당장 개혁 못하면 나중엔 불가
공무원연금 문제 역시 이러한 사례들의 전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원세훈 장관이 '이왕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다. 하지만 해야 할 일로 여기고 할 의지가 있다면 당장 추진해야 한다. 이유와 방법, 반론과 재반론 따위에 대한 자료는 정부 곳곳에 잔뜩 쌓여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대불산단의 전봇대 수십 개라도 하루이틀이면 뽑아낼 수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미루다 보면 나중엔 그 전봇대 주변의 전깃줄 몇 가닥 잘라내는 일도 한없이 힘겨울 것이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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