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노무현 정권과 관련하여 많이 언급된 단어 중의 하나는 386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세간에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고소영이라는 단어라고 들었다. 새 정부의 실세 인물들이 고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이라는 것을 빗대어 가리키는 단어이다. 우리는 왜 이런 식의 단어를 새로 만들고 또 즐겨 사용할까?
이런 범주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아마도 인류가 진화하면서 보다 경제적으로 정보처리를 하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인지적 전략의 하나인 것 같다. 어떤 것이든 조금만 달라도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면 우리는 제대로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서 집 앞의 나무는 나마, 그 나무가 파랗게 변하면 나머, 잎이 떨어지면 나며, 회사 입구에 있는 나무는 나며 등으로 조금만 달라도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하고, 그런 방식이 모든 대상에 적용되는 것이라면 정보처리 부담으로 리는 제대로 살아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뇌가 대형 유조선만큼 크다고 하더라도 일일이 인지적 처리를 해내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도 인류는 비슷한 대상을 묶어서 한 이름으로 불러 범주화하고 그에 언어적 이름을 붙이는 능력을 발달시켰다. 어떤 나무이건 그에 대하여 잘 모르더라도 나무라는 하나의 공통된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줄 알면, 나무가 지니는 일반적인 특성을 그 나무도 지니고 있으리라고 믿고 우리는 그 대상을 이해하고 상호 작용하는 편함을 누리게 된다. 대상의 정보처리에서 인지적 경제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함을 위하여 인류가 발전시킨 인지적 전략은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도 있다. 순기능은 그 덕분에 사람들이 그 대상에 대하여 직접 경험하거나 깊이 분석하지 않고도 쉽게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집단 내에서는 집단 구성원 간의 결속이나 정체감 형성을 위한 손쉬운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역기능도 만만치 않게 크다. 복잡한 사회에서는 이러한 이름 붙이기가 실상은 근거가 박약한 어떤 부정적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만들어 내고, 틀린 생각을 정당화하고, 부풀리고, 결국은 사회를 편가르기 식으로 나누는 데에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심리학 실험에 의하면 급진적 진보주의자나 완강한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이 잘 난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보다 지적 능력이 낮기 때문에 그렇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물을 다원적으로 볼 수 있는 인지적 통이 작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심리학 실험에 의하면 상황이 복잡하거나 다른 정보처리를 하여야 할 부담이 크면 클수록 사람들은 특정 집단 명칭에 더욱 부정적인 특성을 연결시킨다고 한다.
정보처리 부담이 적은 상황에서는 어떤 집단의 긍정적 특성을 지닌 사람 예를 보거나 부정적 예를 보거나 간에 어떤 사례를 더 많이 보았는가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 집단을 판단한다. 반면, 상황이 복잡하거나, 정보처리 부담이 높아지거나, 또는 지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서는 긍정적 사례보다는 부정적 사례를 본 횟수가 더 큰 영향을 주어 그 집단 이름에 대하여 부정적 생각이 자리잡는다.
긍정적 사례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부정적 예를 한 두 경우만 보면, 그 집단은 이러저러한 부정적 속성을 원래 갖고 있고 그 집단 사람들 모두 그렇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386, 고소영 등의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들은 국민들에게 이러한 인지적 착각을 부추기는 사람들, 사회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인 것 같다.
이정모 성균관대 심리학과 및 인지과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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