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재계 지도층이여, 위선의 가면을 벗어라.’
미국인들을 경기 침체의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를 둘러싸고 책임 공방이 치열하다. 민주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의 실정을 맹공격하고 있고, 부시 대통령은 모기지(주택자금대출) 업체들의 무분별한 대출 관행과 소비자들의 과도한 주택 소유욕 탓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모기지 업체들은 공화ㆍ민주 양당 지도층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일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의 전개 과정에서 행해진 미국의 정재계 지도층의 발언과 조치들을 분석한 뒤 “이번 책임에서 자유로운 지도층은 극히 드물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말 저소득층이 할부로 주택을 매입할 때 겪는 가장 큰 애로 사항이던 초기 계약금(down payment)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주택대출지원법에 서명해 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 대통령 선거를 1년 가량 앞두고 이뤄진 법안 서명에서 부시 대통령은 “보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기 소유의 집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국가적 관심사여야 한다”며 법안의 의의를 역설했다.
이 법이 탄생하자 저소득층은 현금 없이 앞 다퉈 주택을 매입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다음해인 2004년의 미국의 주택 소유자 비율은 69%로, 1996년의 65%보다 4% 포인트 높아졌다. 여기에는 패니 매, 프레디 맥 등 모기지 업체들이 공격적으로 주택 자금 대출에 나선 것도 한 몫했다. 이 법은 특히 히스패닉계와 흑인들이 ‘자기 집 마련’ 꿈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 해 12월 이들 히스패닉계와 흑인의 표 덕분에 재선의 문턱을 넘는데 성공했다.
2005년 초 주택 경기 침체로 일부 저소득층이 이자를 상환하지 못해 파산하는 등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의 징후가 포착되자 민주당을 중심으로 주택 대출 요건을 강화하는 모기지 개혁 법안이 추진됐다. 그렇지만 이 법안은 서민의 대변자임을 자처하는 필 그림 공화당 상원의원의 선동적인 주장에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미국인이 단지 소득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주택 대출 신청이 거부되는 것을 막는 게 우리의 의무다”라고 그는 역설했다.
2006년 8월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지자 캘리포니아주 주정부는 미국 2위 모기지 업체인 뉴 센추리를 상대로 무분별한 대출로 파산자를 양산하지는 않았는지를 놓고 감사에 들어갔으나 무혐의로 판정했다. 그렇지만 뉴 센츄리는 7개월 후인 2007년 3월 파산했고, 캘리포니아주 주정부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를 최소화하거나 막을 수 있는 기회가 몇 차례 있었으나 지도층의 개인적 이해득실에 기초한 결정으로 놓쳤다”면서 “미국의 지도층이 이제라도 거국적인 시각에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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