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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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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입력
2008.03.2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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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하 / 문학동네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보랏빛 노을을/ 가슴에 안았다고 해도 좋아/ 혹은 하얀 햇빛 깔린/ 어느 도서관 뒤뜰이라고 해도 좋아/…/ 아아 밀물처럼/ 온몸을 스며 흐르는/ 피곤하고 피곤한 그리움이여/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이제하(71)가 1950년대 중반 고교생 때 쓴 시, 학원문학상 수상작으로 당시 한국의 문학소년ㆍ소녀들을 온통 들뜨게 했다는 이 시 ‘청솔 그늘에 앉아’가 생각난 것은 봄날 때문인지 모르겠다.

1998년이니까 꼭 10년 전이다. 그가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리사이틀을 한다는 제보(?)를 받고 달려갔다. ‘청솔 그늘에 앉아’ 등 자작시에 직접 곡을 붙인 노래 10여곡과 ‘세노야’를 통기타 치며 매력 넘치는 허스키로 부르는, 이미 이순 나이 지난 그의 모습에는, 타고 난 아니 신들린 예술가라는 표현 외에 더 적절한 것이 없었지 싶다.

시인이자 소설가이고 화가이자 가객, 여전한 현역인 그의 이름 앞에 붙는 르네상스적 예술가라는 수식은 이제하 이외의 다른 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의 작품 제목처럼 그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 나그네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는 이미 3년 전에 죽은 아내의 유골을 뿌리려 동해안으로 가는 한 남자의 여정이다. 그 행려에 분단 문제와 샤머니즘, 현실과 환상, 필연과 우연이 얽혀들면서 이제하의 소설은 시처럼 그림처럼 펼쳐진다.

‘환상적 리얼리즘’ ‘광기의 미학’으로 불리는 그만의 글쓰기다. 그를 만나보면 그 환상, 광기는 결코 포즈가 아니다. “충만하면서도 근원적으로는 공허한 바다처럼, 나에게 문학이란 차라리 어깨에 힘주어야 하는 그 모든 거창한 것들을 완전히 제외시켜 버리고 난 뒤에야 만날 수 있는 어떤 실체이다.

한 올의 거짓도 틈입 못할 정도로 나와 세상 사이가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졌을 때에야 그 핀트도 바로 잡힌다… 이 나라에서 문학을 한다는 소리는 그래서 결국은 가난의 의지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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