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불은 껐다. 패닉으로 치닫던 전세계 금융시장이 미국발(發) 호재에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또다시 ‘문제는 이제부터’다. 공포를 불러온 근본 여건이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는 장기화 추세이고 인플레 압력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불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 0.75% 였을까
전날까지 시장은 100% ‘1%포인트 인하’를 예상했었다. 1.25%포인트 인하 전망까지 나왔지만 결과는 0.75%포인트. 리먼브러더스의 호실적 효과가 아니었다면 당장 시장에 큰 실망을 줬을만한 수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를 두고 “금융 위기에 대응하는 미국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리인하가 경기부양을 위한 강력한 수단임은 여전하지만 그 자체로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양날의 칼’인 이상, 금리 인하만으로는 현재의 난맥상을 풀 수 없다는 인식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최근 자금시장에 2,000억 달러를 풀고 베어스턴스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등 유동성 공급을 통한 거시경제적 보완책을 잇따라 제시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금리인하 폭이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실제 유동성 지원을 받은 기관이 느끼기에는 강력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시장에 ‘다른 당근’을 제시하며 부담 가는 금리인하 폭은 되도록 잘게 쪼개보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새로운 당근이 더 나올 가능성도 높다.
■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 더 내릴까
FRB는 이번에도 “필요한 조치를 시의적절하게 취해 나갈 것”이라며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분명히 열어 놓았다. 하지만 여지는 크지 않다.
불과 6개월 사이에 2.25%까지 떨어진 기준금리는 미국의 최근 평균 물가상승률(3.1%)은 물론, 핵심 물가상승률(2.3%) 보다도 낮아졌다. 물가를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이미 마이너스상태인 셈인데 이런 상태가 오래 가기는 힘들다.
효과도 의문이다. 갈수록 금리인하 자체가 시장에 미치는 약발이 떨어지는데 반해, 그로 인한 달러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 위험증가 등 경제에 무차별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날 리만브러더스 등의 금융주 실적이 그동안의 금리인하 효과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곧 경기회복의 봄이 올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지만 대다수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현재 금융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며 “FRB의 금리인하 역시 미봉책일 뿐, 200만명의 미국인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잃고 그것이 금융시스템 전반을 갉아먹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국내 시장의 향배는
뉴욕 증시의 급반등으로 국내 금융시장도 오랜만에 화색을 찾았으나 내용은 여전히 불안했다. 원ㆍ달러 환율은 이날 이틀 연속 하락해 달러당 1,010원대 아래로 내려섰지만 장 초반 시원하게 빠지던 기세와 달리, 오후 들어 정유업체들의 결제수요, 역외 달러송금 수요 등이 겹치면서 한때 1,015원을 다시 돌파하기도 했다. 하루사이 18원 가량을 오르내린 자체가 시장의 불안감을 드러낸다.
주식시장 역시 오랜만에 급반등했지만 ‘베어마켓 랠리’(약세장 속 단기반등 장세)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지난해 최대 규모의 부실 상각을 발표했던 씨티그룹 등 투자은행들의 실적 발표가 이어지고 있고 물가, 고용, 소비심리 등 미국의 경제지표도 결코 우호적이지 않아 본격 상승추세를 논하기는 이르다는 것이다.
대신증권 성진경 시장전략팀장은 “미국 증시 폭등은 리먼브러더스의 실적에 안도한 측면이 강했지만 미국 부동산경기의 침체와 금융주의 실적 악화가 지속된다면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안타깝지만 우리 경제의 최대 악재이자 현재로서는 방향성을 점치기 어려운 외부여건의 변화를 당분간은 지켜보는 수 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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