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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명동백작

입력
2008.03.1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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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구 / 일빛

1956년 3월 20일 시인 박인환이 사망했다. 30세였다.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밖에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시는 많은 한국인들의 가슴에 영원하다. “생전 좋아하던 그것을 마음껏 사 주지 못한 게 한이 된다고 김은성이 조니워커 한 병을 들고 와 죽은 박인환의 입에다 부어주고 자기 입에다 따르자, 들러리 친구들이 너도 나도 박인환의 입에 술을 부어주고 대작이나 하듯이 마셨다…”

소설가ㆍ언론인 이봉구(1916~1983)는 <명동백작> 에서 썼다. 그렇게 술 좋아했던 ‘명동백작’ ‘댄디 보이’ 박인환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월이 가면’이 명동 거리를 채우며 울려 퍼졌다고 한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세월이 가면’은 박인환이 죽기 얼마 전에 쓴 시다. 명동의 대포집에서 가수 나애심, 작곡가 이진섭, 언론인 송지영 등과 술잔을 기울이던 박인환이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했지만 계속 사양하자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을 넘겨다 보던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붙였고, 나중에 이봉구와 함께 합석한 테너 임만섭이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하자, 지나던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보냈다. 이봉구는 이 불후의 ‘명동 샹송’이 탄생하던 그 때를 “명동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라고 회상하고 있다.

<명동백작> 은 1950~60년대의 명동, 그곳에서 문화와 예술과 술과 담배로 지샜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시 ‘목마와 숙녀’에서 ‘페시미즘의 미래’를 물었던 박인환, 그를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다”고 대놓고 경멸했지만 절친한 친구였던 김수영, 그리고 김관식 이중섭 오상순 전혜린 등등이 그들이다.

박인환이 죽고, 10년 후 전혜린이 은성 주점에서 술을 마신 다음날 죽고, 하나둘 그들이 떠나면서 명동도 사그라졌다. 다시 오지 않겠지만, 그려보면 가슴 저릿해지는, 우리 문화사의 아련한 시절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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