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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마 오른 '방송 프로그램 등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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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마 오른 '방송 프로그램 등급제

입력
2008.03.1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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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사는 하모(42)씨는 주말 밤 12시께 13세 아들과 함께 케이블TV의 한 채널을 무심코 보다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듣기 민망한 성적 표현과 함께 노출이 심한 남녀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채웠기 때문이다. 하씨는 “가족과 TV를 보고 있을 때 야릇한 내용의 방송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야 하겠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방송의 선정성이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비판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현행 방송프로그램 등급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 청소년 심야 TV시청 증가세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서 <청소년 tv시청 행태 및 이용자 특성 분석> 에 따르면 중고생의 심야시간(밤12시~새벽2시) TV시청량이 최근 3년간 꾸준히 늘어났다.

중학생의 경우 2005년 17.8%에서 2007년 18.4%로 2년새 0.6%포인트가 증가했으며 고등학생은 2007년 18.6%로 2005년(17.8%)보다 시청량이 0.8%포인트 상승했다. ‘19세 이상 시청가’ 프로그램이 대거 배치된 시간대에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시간대별 청소년 시청률 현황도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중고생은 밤9시부터 시청률이 상승하다가 10시 무렵에 최고치에 이르고 11시 이후 하락한다. 오후1시부터 밤10시까지인 청소년보호시간대의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하는 결과다.

시청률이 높은 19세 이상 시청가 프로그램에 청소년들이 높은 시청점유율 등 보이는 등 구체적인 프로그램 시청유형도 충격적이다.

예컨대 스릴러 에로물인 미국영화 <육체의 거래> 는 한 케이블TV에서 심야시간에 방송했음에도 중고생 시청점유율이 37.5%에 달했다. ‘법률적 자문과 함께 이혼과 위자료에 대한 오해 해소’라는 ‘건전한 명분’을 내세운 케이블TV 프로그램 <김구라의 위자료 청구소송> 의 경우 이혼과 무관한 중고생 시청점유율이 46.5%나 됐다. 재연 드라마형식의 프로그램 진행이 청소년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평가다.

보고서를 작성한 박웅진 방송영상산업진흥원 연구원은 “19세 이상 시청가 등급이 오히려 청소년을 유혹하는 일명 ‘금단의 열매’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방송사들이 교묘하게 이를 이용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 “자율규제 유명무실” 목소리 높아

2001년 3월부터 방송국들은 방송위원회의 사후 심의를 전제로 프로그램 등급을 자율적으로 정하고 있다. 방송위의 ‘방송프로그램의 등급분류 및 표시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보도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생활정보, 시사관련 대담ㆍ토론 프로그램 등은 등급분류 대상서 제외다.

많은 전문가들은 “현행 방송 프로그램 등급제은 너무 허술하다”며 청소년보호시간대를 더 늘리거나 모든 방송프로그램에 등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세 이상 시청가 프로그램은 아예 페이TV(Pay TVㆍ시청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돈을 내는 TV)로만 시청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디지털 수신 장비에 브이칩(V-Chipㆍ음란 폭력물의 시청을 제한하는 전자장치)을 도입해 청소년들의 성인 프로그램 시청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웅진 연구원은 “기술적인 시청 통제 장치의 적극적인 도입이 필요하며 공적 단체의 프로그램 등급에 대한 정기적 평가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학부 교수도 “요즘 방송들은 광장에서 음란물을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라며 “단순한 프로그램 규제가 아닌 편성규제로 정책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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