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9 총선이 3주 앞으로 다가온 18일 선거 구도의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각종 선거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노무현 실정 심판론’대신 ‘새 정부 심판론’이 이번 총선의 새로운 구도로 자리잡는 양상이다. ‘노 정권 심판론’과 ‘새 정부 안정론’에 기대어 한때 200석 목표까지 세웠던 한나라당과 새 정부로선 극히 곤혹스러운 상황 변화다.
흔히 “선거에서는 구도가 승부의 8할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인물을 내세워도 구도가 불리하면 이기기 힘든 게 선거다.
‘탄핵 심판론’이 휩쓸었던 2004년 17대 총선을 제외하고는 2006년 지방선거, 여러 차례의 재보궐 선거 등 참여정부 시절의 각종 선거를 지배한 논리는 ‘노무현 정권 심판론’이었다. 이는 한나라당이 각종 선거에서 연승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당시 여당은 인물과 정책을 내걸며 승부를 펼쳤지만 ‘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선거 구호 아래에선 ‘백약이 무효’였다. 한나라당은 그 구도를 작년 12월까지 끌고 와 대선 압승을 일궈낼 수 있었다. 그 분위기가 대선과 불과 4개월 간격을 두고 치러지는 18대 총선까지 그대로 살아 있으리란 전망은 대선 직후만 해도 대세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노 정권 심판론은 희석되기 시작했다. 그 자리를 새 정부 견제론이 채우기 시작했고, 새 정부 안정론을 서서히 위협해오기 시작했다. 대선 후 3개월, 새 정부 출범 후 불과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유권자들 사이에선 “새 정부의 오만함을 심판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일제히 하향 곡선을 긋기 시작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씨는 “출범한지 한달 밖에 안된 이명박 정부로선 억울하고 답답하겠지만, 이번 총선의 성격은 새 정부에 대한 평가 내지는 심판의 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누가 서둘러 유권자들을 새 정부 심판의 장으로 내세운 걸까.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새 정부가 너무 조급했다. 인수위 단계부터 설익은 정책을 마구 쏟아냈고 총선은 염두에 없는 듯 ‘고소영’ ‘강부자’로 상징되는 특정 계층, 지역에 편중된 인사를 단행해 국민들에게 거부감을 줬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의 총선 공천 과정에서도 실책은 이어졌다. 경희대 김민전 교수는 “참여정부의 실패도 대통령당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지지기반을 동강낸 데서 출발했다”며 “이번 공천을 보면 한나라당이 지지기반을 동강내는 우를 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을 반전시키려는 듯 새 정부는 최근 “참여정부가 임명한 기관장들 때문에 일이 안 된다”며 ‘구 정권 인사 사퇴론’을 꺼내 들었다. 이번 총선에서 노 정권 심판론의 불씨를 살려보려는 고육지책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시도가 급격히 부각되는 ‘새 정부 심판론’에 밀리는 모습이다.
야당과 무소속 후보들은 이번 총선을 새 정부가 내놓은 중심정책과 공약에 대한 심판의 장으로 몰아 세운다는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공천 탈락에 반발,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무성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 “대운하는 해서는 안 될 사업으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며 “탈당 의원들이 공동으로 대운하 반대 공약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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