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여ㆍ납치 당시 45세)씨는 납치당한 뒤 3년여 동안 실종 상태다. 수사당국은 “A를 죽여버리겠다”고 공공연히 외치던 B(54)씨가 A씨를 납치한 뒤 A씨가 실종된 것을 확인하고 B씨를 A씨의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A씨의 사체는 물론 B씨가 A씨를 살해했다는 결정적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직접증거는 없고 정황(간접증거)만 있는 이런 사건에서 B씨의 살인죄는 성립할까. 이혜진(11) 우예슬(9)양 유괴ㆍ살해사건에서도 용의자 정모(39)씨가 지목한 곳에서 시신 일부분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살인과 관련한 직접 증거들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향후 수사에서도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공소유지 과정에서 이 같은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태다.
덤프트럭 운전기사였던 B씨는 A씨의 여동생과 2004년부터 동거했지만, A씨가 두 사람의 교제를 반대해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국 A씨가 2005년 11월 여동생을 일본으로 보내자 B씨의 분노가 폭발했다. B씨는 성모(33)씨를 끌어들여 2005년 12월 28일 0시께 A씨 집 앞에서 A씨를 납치했다.
경찰은 납치ㆍ살해 혐의로 B씨와 성씨를 검거했다. 성씨는 “나는 자동차로 A씨를 납치한 2시간 뒤에 차에서 내렸고, 그때까지 A씨는 살아 있었다”고 주장했다. 한때 범행을 자백했던 성씨는 납치ㆍ살해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검찰은 A씨의 시신 또는 혈흔, 범행도구 등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B씨를 살인 등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을 맡은 대전지법은 B씨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A씨를 실종 상태로 볼 수 있지만 사망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대전고법은 유죄를 인정,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대전고법은 특히 공범 성씨가 A씨 납치 당시 입고 있던 점퍼와 바지를 버린 상황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성씨는 여관에서 살 정도로 돈이 넉넉치 않았는데 옷을 버릴 정도면, 세탁을 해도 입고 다니기 꺼림칙할 정도로 A씨의 피가 묻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3부(주심 김황식 대법관)는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대전고법으로 돌려 보냈다고 18일 밝혔다. 대법원은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도 간접증거의 관련성을 고찰해 살인죄 유죄를 인정한 판례가 있다”며 “하지만 이때는 간접증거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은 “성씨가 버린 옷을 수사당국이 확보하지 못해, A씨 혈흔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또 A씨가 제3자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객관적 정황상 B씨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B씨의 살인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혜진ㆍ예슬양 사건의 경우 직접증거는 없지만 예슬양의 시신을 유기한 장소를 지목한 정씨의 진술이 명백한 간접증거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더구나 정씨의 집에서 나온 혈흔이 두 어린이의 것으로 밝혀진다면 정씨는 살인으로 중형을 면할 수 없다.
고주희 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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