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숙명' 김해곤 감독 "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결국 캐릭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숙명' 김해곤 감독 "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결국 캐릭터"

입력
2008.03.18 18:09
0 0

“연민이지. 그게 내가 삶을 연민하는 태도인 것 같아.”

김해곤 감독(44)의 영화는 대사로 기억된다. 차마 지면에 옮기지 못하는 질펀한 대사들. 예컨대 “야! 너 그 X하고 X은 쳐도 되는데, 팔은 베고 자지 마!” 그의 영화는 눅진하다. 징그러울 정도로 사실적이고, 꼭 저래야 될까 싶을 정도로 적나라하다. 그런데 그렇게 만드는 이유가 ‘연민’이라고 했다. <숙명> 의 개봉을 앞둔 그를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숙취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거칫한 피부에 목소리가 푹 꺼져 있었다.

“난 삶이 그렇게 즐거운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어. 가끔 내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도 ‘XX, 세상에 불행으로 덧씌워진 인생이 얼마나 많은데 나만 이래도 되나’ 싶고…. 삶의 덫에 걸려 엎어지는 사람들을 볼 땐 왠지 그들이 억울하게 보여. 살아온 환경과 교육을 무시하고 그들을 욕할 수 있겠어? 그래서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아.”

그렇다고 해도 그의 영화는 지나치게 질척인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천박하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대사들, 결국 다 내 머리에서 나온 거지. 내 삶이 원래 질펀해서 그런가봐. 근데 오히려 많이 배운 사람들이 그런 대사에 전율하던데.” 담배 때문에 자리를 옮기느라 대화가 끊겼다. 실내에선 금연이라 말하고 돌아서는 점원의 뒤통수에 김 감독이 한 마디 붙였다. “XX놈!” 입에 붙은 욕설이 괜히 정겨웠다.

비유하자면 김 감독의 영화는 판소리다. 걸죽하게 가락을 뽑다가 길고 긴 사설이 이어진다. 역시 배우의 대사를 통해서다. 이번 영화에서도 배우들은 심청가의 한 대목인 듯 격정적인 말을 콸콸 쏟아 놓는다. 피와 살이 튀는 액션신도 그래서 추임새로 느껴진다. 육두문자로 화려하게 장식된 대사들이, 고전문학의 한 대목 같기도 하다.

“글쎄. 거북할 정도로 리얼하고 톡톡 튄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운율이 느껴지지 않고 산문처럼 들린다면 문제가 있는 거지. 그게 문어체로 들릴 줄은 몰랐네. 뭐, 그렇다면 감독의 역량이 부족해서겠지.” 이 대목부터, 질문이 모호하거나 막히는 물음엔 ‘감독 역량의 부족’이 답이었다. 직선적이고 에둘러 가지 않는 감독의 캐릭터가 그의 영화와 똑같았다. 하지만 내러티브의 연결이 너무 헐겁다는 지적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단단해 졌다.

“일일이 설명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영화에서 표현하려는 것은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각자의 캐릭터인데, 그렇게 하려니까… XXX, 에잇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 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결국 캐릭터인데 말이지.”

골격을 숨기지 않는 마초성과 ‘나이브’하게 느껴질 정도로 절제되지 않는 감정 표출. 어쩌면 시대의 흐름과 다소 동떨어진 작품을 하는 감독이 영화로 전하려는 얘기는 무엇일까. “아름답고 상큼한 이야기를 하는 감독은 따로 있지. 하지만 난 살갑게 얘기하는 것은 닭살이 돋아서… 힘들고 비루한 이야기를, 말랑말랑하지만은 않은 삶의 진실을 얘기하는 감독도 필요하지 않을까.”

■ 영화 '숙명'

'놈'들의 거칠고 안쓰러운 욕망, 그리고 배신

남자들. 거칠고 비열하고 잔혹하다. 그리고 안쓰럽다. 배신이니 복수니 의리니 하는 말들이 이어지다가, 한국 누아르 특유의 야구방망이 액션이 난무한다. 송승헌과 권상우라는 톱스타 둘이 김해곤 감독이 쳐 놓은 링 안에서 투견처럼 으르렁댄다. 하지만 살기 띤 눈빛의 초점이 모호하다. 그래서 산만하고 지루하다.

어둠의 세계를 휩쓸던 네 친구가 새출발을 위해 카지노를 턴다. 그러나 계획은 어긋나고, 오해와 증오가 겹쳐지며 그들은 서로 적이 된다. 철중(권상우)의 배신으로 나머지 셋은 지옥 같은 삶에 빠져든다. 공식대로, 우민(송승헌)은 교도소에서 나와 복수극을 시작한다.

전작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에 비해 김 감독의 연출 응집력이 떨어져 보인다. 스타일은 살아 있으되, 그것만으로 관객이 만족할 수 있을지…. 20일 개봉. 18세 관람가.

글 유상호 기자 사진 배우한 기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