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모든 것은 사랑이 된다. 켜켜이 시간이 쌓이면, 서러움과 원망도 따뜻한 촉감으로 남는다. 내가 기억하듯 누군가도 나를 기억할 것이라는 믿음. 메마른 삶에 허락된 한 줄기 촉촉한 위무다. 하지만 세상의 잔인함은 종종 그것마저 빼앗는다. 그리고 삶은 지속된다.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 는 알츠하이머병이 소재다. 수많은 로맨스에서 반복된, 닳고 닳은 얘깃거리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짠내 나는 신파와 거리가 멀다. 하얗게 지워져 가는 기억과 그것을 붙들고 싶은 욕망, 그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번지는 감정을 통해 생의 원초적 의문을 매만진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영화는 답이 아니라, 그 질문을 그려낸다. 어웨이>
깊은 주름이 우아함으로 느껴지는 피오나(줄리 크리스티). 강인한 그녀는 사라져가는 기억을 담담히 얘기한다. 그리고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집을 나서며 립스틱을 바르는 모습엔 옹골진 기품이 배어있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따라나선 남편을 오히려 위로한다. “난 가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간 건 아냐.” 차는 천천히 요양원을 향해 달린다.
대학 강단에서 물러난 뒤 고적한 만년을 즐기던 그랜트(고든 빈센트)에게 아내의 병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그러나 버텨내야만 할 슬픔에 천천히 자신을 적신다. 아내를 위해 헌신하는 그의 기억 속엔, 그녀를 괴롭게 만든 과거가 똬리를 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양원으로 가는 피오나의 무덤덤한 회상에 언뜻 그것이 스친다.
삶의 비극은 늘 마음 속으로 준비한 폭보다 넓게 닥쳐온다. 요양원 적응을 위해 그랜트는 한 달 동안 피오나를 만나지 못한다. 30일 뒤 머리를 매만진 그랜트는 꽃을 들고 아내를 찾는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그랜트를 망각 너머로 흘려 보냈다. 그리고 요양소에서 만난 오브리(마이클 퍼피)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그랜트의 시선이 안타까움과 질투로 물컹댄다.
그랜트는 아내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을 선택한다. 그 선택은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대로다.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방문객을 향해 그랜트는 혼잣말하듯 얘기한다. “그냥 저 사람에게 ‘공간’을 좀 줘야겠어. 옆에 앉은 저 사람과 사랑에 빠진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아. 난 그냥 지켜볼거야.” 아내의 새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 그는 오브리의 아내 마리앤(올림피아 듀커키스)을 찾아 간다.
영화는 통속적 신파의 늪에서 허우적대지도, 작위적인 모던함을 뽐내지도 않는다. 관객은 성스러움마저 느껴지는 그랜트의 사랑에 빠지기 쉽지만, 이 영화는 그것의 숭고함을 일방적으로 찬양하지 않는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시작된 피오나의 사랑도, 오브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마리앤의 사랑도 부정되지 않는다. 사랑은 삶의 종착역에 다다른 노년에게도 여전히 의미를 알 수 없는 신비함인 것일까.
시종 적요한 분위기와 달리, 영화는 앞과 뒤를 어지러이 오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전혀 소란이 느껴지지 않는다. 매끄럽게 이어 붙이는 마름질 솜씨가 백전노장 배우들의 연기 못지않게 뛰어나다.
섬세한 유리세공품을 연상케 하는 절제미와 담백한 카메라워크도 이 영화의 빼 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이 올해 스물 여덟인 아역배우 출신 감독(사라 폴리)의 데뷔작이라는 점. 캐나다 영화계는, 분명 복덩이 하나를 얻었다. 27일 개봉. 12세 관람가.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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