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다시 맞붙은 ‘조 - 서’의 라이벌 대결에서 서봉수가 조훈현을 꺾었다. 17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제5기 전자랜드배 현무왕전 결승에서 서봉수가 조훈현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만 51세 이상 기사들만 출전하는 우승 상금 1,000만원의 미니 기전이지만 최근 랭킹이 50위 밖으로 밀려나는 등 노쇠 징후를 보이고 있는 서봉수로서는 모처럼 맞은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절대로 지고 싶지 않은 숙명의 라이벌, 조훈현을 누르고 따낸 우승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두 동갑내기 라이벌의 맞대결 무대는 쉰을 넘긴 나이에도 젊은 시절과 다름 없이 이글거리는 투혼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날 바둑은 두 사람의 기세싸움이 압권이었다. ‘조-서’는 평생의 라이벌답게 초반부터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전투 바둑으로 일관, 관중들을 즐겁게 했다.
1973년에 처음 바둑판 앞에서 만난 이래 어느덧 35년의 세월이 흘렀고 공교롭게도 바둑판 눈금의 숫자와 같은 361번째 대결이 된 이번 대국은 두 사람의 평소 기풍대로 조훈현의 공격과 서봉수의 실리로 출발했다.
중반에 접어 들면서 서봉수가 중앙 삭감을 위해 특공대를 투입했고, 조훈현이 이를 섬멸하기 위해 신랄한 공격을 퍼부으면서 한 치 앞을 내다 보기 힘든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한때 조훈현의 우세가 점쳐졌으나 서봉수의 끈질긴 반격이 이어졌다. 결국 우하귀에서 조훈현이 수읽기 착각을 범하면서 단박에 형세의 균형이 무너졌다. 이후 서봉수가 흔들림 없는 마무리로 승리를 굳혔다.
대국이 끝나고 두 기사는 언제나 그랬듯이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돌을 쓸어 담고는 인사도 없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국 전에도 두 사람 모두 10분전에 이미 대국장에 도착했지만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 평생의 라이벌이란 말을 실감케 했다.
이 날 대결에서 서봉수가 승리했지만 두 기사의 통산 전적은 아직도 조훈현이 243승118패로 우세하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전적은 서봉수가 6승5패로 한 걸음 앞섰다. 가장 최근인 지난 2006년에도 서봉수가 역시 전자랜드배 현무부에서 조훈현을 누르고 결국 우승까지 차지했다.
한편 전자랜드배 왕중왕전은 이로써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4개 부문 예선전을 모두 끝내고 4월 중순부터 각 부문 8강 진출자들이 32강 토너먼트를 벌여 최종 우승자를 가리게 된다.
■ 서봉수 일문일답/ “바둑은 삶 자체… 공부 한다 안한다는 게 어색”
-우승을 축하한다. '조-서 대결'이어서 더욱 느낌이 다를 것 같은데.
="기쁘다. 자그만한 우승이지만 우승해 본 기억이 워낙 아득해서 무척 기분 좋다." (서봉수는 자신이 2년전 바로 이 대회에서 우승했던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늘 바둑은 어땠나.
="초반엔 좋지 않았는데 우하에서 흑 몇 점을 잡아서 승리의 계기가 마련됐다. 후반 바꿔치기가 결정타였다."
-종국 후 복기 없이 곧바로 일어섰다. 예전부터 조훈현과의 대국에선 복기하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 라이벌 의식 때문인가.
=(잠시 생각하다가) "현무왕전은 속기 기전이라 이번 대회에서 한 번도 복기를 하지 않았다."
-요즘 바둑 공부는 어떻게 하나.
="바둑 공부는 바로 나의 삶 그 자체이다. 특별히 한다, 안 한다 말하는 게 이상하다. 체력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이진 못하지만 항상 쉬지 않고 꾸준히 공부한다는 점에서는 젊은 기사와 다를 바 없다. 도장에서 원생들을 지도하면서 두는 속기도 큰 도움이 된다." (서봉수는 요즘 주 2회 권갑룡 도장에서 프로 지망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초읽기 '아홉'에서 착수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속기에 제법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드는데.
="요즘 인터넷 바둑을 많이 두면서 속기 연습을 한 게 효과를 본 것 같다. 아마추어는 물론 프로라 할 지라도 나이에 관계없이 꾸준히 노력하면 실력은 자연히 늘게 돼 있다."
-올해 한국바둑리그에서 선수 대신 감독의 길을 택했다. 어떤 의미로 해석하면 되겠는가.
="큰 의미는 없다. 선수로 뛰고 싶었지만 랭킹이 낮아서 시드 배정도 못받고 어렵게 예선 통과해 봤자 후보로 뒷전에 밀리는 게 현실이다. 마침 감독 제의가 왔길래 기쁜 마음으로 응했다. 모처럼 젊은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즐겁게 한 해를 보내려 한다."
-50대 중반이다. 대국할 때 마음가짐이 전과 다를 듯한데.
="아무래도 젊었을 때처럼 승부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그래선지 바둑을 둘 때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오늘 바둑도 즐겁게 두었더니 결국 승리하게 됐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0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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