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K에너지는 요즘 초비상 상태다. 원ㆍ달러 환율 급등 탓에 17일 하루에만 부채가 630억원 가량 늘어났다. 현재 총 외화부채가 20억달러(약 2조원) 규모인데, 환율이 하루 1원 오르면 20억원의 외화부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회사 자금부는 환율 급ㆍ등락에 따른 ‘시나리오 플랜’에 따라 리스크 대응전략에 돌입하는 한편, 달러 강세가 지속될 경우에 대비해 일부 원유수입 계약의 기준통화 교체 여부까지 검토하고 있다.
#2. CJ제일제당은 제품가격 인상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옥수수, 밀, 콩 등 주요 제품의 원료인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이 10원 오르면 연간 곡물수입 부담이 30억원 늘어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자금부 관계자는 “지난해의 경우 국제 곡물가격이 올라도 환율이 내려가 버틸 만 했는데, 최근엔 환율 비상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환율급등이 이어질 경우 제품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하소연했다.
고유가 악재에 이어 몰아 닥친 환율 충격으로 산업계 전반이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이날 원ㆍ달러 환율이 1,000원을 돌파하면서 석유와 원자재를 수입하는 철강과 정유ㆍ화학, 항공ㆍ해운, 식품 업계 등은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이중고’ 시름 철강ㆍ정유ㆍ항공업계
핫코일과 슬래브 등 철강 원자재를 수입하는 동국제강과 하이스코 등 냉연 업체들은 환율급등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원가 절감과 수입선 다변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철강협회 오금석 팀장은 “포스코 등 대기업들은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를 수입물량 결제로 상계 처리하는 시스템을 갖춰 당장 타격은 없겠지만, 중소업체들은 외화 차입의 어려움까지 겹쳐 총체적인 난국을 맞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삼성석유화학 등은 고유가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환율마저 치솟아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SK에너지 황해동 팀장은 “정제마진이 계속 떨어져 정유 부문은 감산에 들어갔으며, 화학 부문도 4개 공장 중 1개가 가동을 멈췄다”며 “일단 감산체제 속에서 외부환경의 변화를 지켜보며 원가 절감에 집중하고 있지만, 별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고유가와 환율 급등의 직격탄을 맞은 항공ㆍ해운업계도 비상대응 체제에 들어갔다. 통상 기름값은 항공사 전체 비용의 30%를 점할 만큼,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한항공의 경우 환율이 10원 오르면 220억원 가량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연료절감 활동조직 운영 및 환율 변화에 따른 리스크 헤지로 일부 손실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환율이 치솟는 상황에선 근본적인 해법이 안 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도 “선박유류 장기 계약과 비용 절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를 통해 얼마나 환율 충격을 흡수할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꿈틀 되는 식품업계 가격 인상 움직임
식품업계의 제품가격 인상이 또 한번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곡물가 상승과 환율 급등의 속도가 너무 가팔라 원가상승 요인을 흡수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삼양사 이명주 팀장은“50% 이상 급등한 곡물가에 비하면 환율 상승이 원가에 미치는 영향은 적은 편이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로 환율 상승이 이어지면 가격인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 배수정 팀장은“원ㆍ달러 환율이 8월 이후에도 1,000원대를 넘는 고공행진을 이어간다면 또 한번의 제품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여행업계도 환율 상승세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많게는 여행상품의 70%를 점하는 항공료 등을 원화로 결제하고 현지 비용을 달러 이외의 화폐로 결제하는 등 환율 위험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자ㆍ자동차 업계는 고환율에 웃는다
반면, 전자ㆍ자동차 업계는 환율 급등으로 수출 경쟁력이 높아져 오히려 표정관리에 나서는 상황이다. 반도체와 LCD는 대부분의 매출이 수출로 이뤄져 환율 상승과 함께 매출액도 눈에 띠게 늘고 있다. 다만, 반도체 설비장비는 외국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투자 부담은 다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휴대폰도 수출 비중(90%)이 절대적이어서 환율 급등에 따른 수혜가 예상되지만, 미국의 퀄컴사에서 공급 받는 통신용 반도체 등 주요 부품 가격이 올라 원가상승 요인이 되고 있다.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현대ㆍ기아자동차는 원ㆍ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매출액이 2,000억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장학만 기자 최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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