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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블레어 하우스와 캠프 데이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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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블레어 하우스와 캠프 데이비드

입력
2008.03.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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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첫 방문을 맞는 워싱턴의 분위기는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호의적일 수 없었다. 워싱턴의 관리와 학자, 외교관들은 반미 기류를 타고 한국의 지도자가 된 노무현 대통령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의심했다. 워싱턴 싱크탱크의 한 연구원이 “한국이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미국에 대드는 것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새롭다.

워싱턴의 불편한 기류는 의전에서도 확인됐다. 미국 정부는 노 대통령을 국빈 예우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거절했다. 1년 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예를 따라 캠프 데이비드 회담을 슬쩍 꺼냈지만 헛수고였다. 의회 연설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미국은 노 대통령의 워싱턴 체류기간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에서 3박을 하도록 하고 오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하는 것으로 동맹국 대통령에 대한 체면을 세워주었다.

5년 전의 노 대통령이나 그 이전 대통령들과 비교할 때 다음달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길은 화려한 행차가 될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통령 전용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 대통령을 맞는다.

현대사에 남을 굵직한 문제가 논의됐던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회담은 그 자체로 이번 방문길의 외교적 의미를 격상시키고도 남는다. 게다가 편안한 차림으로 사적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한미 정상간 친분의 강도를 끈끈하게 해줄 것이다.미국의 의회도 미리 주단을 깔아두었다.

미 의회는 지난달 이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데 이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5번째로 미 의회에서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가히 파격적 환대라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미국이 이 대통령을 대우하는 것일까. 미국의 환대는 노 전 대통령식 표현으로는 ‘코드’, 미국인들이 흔히 쓰는 말로는 ‘케미스트리(Chemistry)’가 맞는 이 대통령에 대한 각별한 예우의 뜻을 담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반미의 단어들을 불쑥 내뱉어 미국인들의 심사를 뒤틀어놓던 노 전 대통령보다는 보수 이념을 공유하는 이 대통령이 훨씬 살가운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게다.

하지만 그 뿐은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한미 관계가 삐걱거리던 지난 5년은 미국에게 동맹의 실리를 챙길 수 있는 호기를 제공했다. 미국은 ‘동맹 관계의 재조정’이라는 한국 정부의 수사적 요구 속에서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정치적ㆍ경제적 가치를 발견했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흘린 핏값에 상응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요구했고, 주한미군기지의 이전 요구를 수용하면서 미군 전력재편 계획에 따른 소요 비용을 한국에 부담토록 했다.

이 대통령이 앞세우는 실용외교는 지난 정부의 외교가 말로는 요란하고 실제로는 얻은 것 별로 없는 속빈 외교였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국익을 앞세우는 실용외교의 본질상 또 다른 측면에서 미국의 이해와 부딪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환대는 양국의 동맹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하고자 하는 호의의 표현이지만 동시에 미국의 실리 기반을 보다 공고히 다지려는 의도를 띨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외교는 자국의 실리를 최대한 확보하려는 정치적 행위이다. 따라서 양국 이해의 공통 분모를 키울수록 동맹 관계는 튼튼해지고 엇박자를 낼수록 동맹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이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의 환대 속에서 동맹도 키우고 국익도 살리는 묘수를 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승일 국제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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