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은 연극의 역사에서 그 태생적 성격이 기성연극의 상업화에 저항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연극 이념과 방법을 실험하고 실천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의 소극장은 거리에 나붙은 포스터들로만 보자면 기획사가 선점한 상업적 흥행공간이 되거나 ‘원 소스 멀티유스’형 대중문화 콘텐츠 전환물로 채워진 곳이 되어 버렸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건물 임대료와 대관료를 감당 못해 대학로 중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소극장들이 이동해 새 둥지를 틀고 있다. 최근 혜화동 변두리에 새로 문을 연 ‘나온씨어터’에서 개관 기념 공연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를 보았다.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그 자식 사랑했네> 등을 발표한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신작이다.(4월 6일까지 민준호 작, 연출) 그> 거울공주> 우리>
배우들이 직접 부르는 팝송과 대중가요에 다소 감상적인 사연을 입히고 개그에 가까운 장면들을 곁들여 놓았다. 창작 의도는 분명하다. 세대 간 소통 단절의 풍속도와 사랑의 방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노래방을 대화 회피 공간이 아니라 대화를 시작하는 공간으로 발상을 삼았다. 무뚝뚝한 경상도 아버지와 아들을 등장시켜 아버지의 재혼이라는 갈등을 버무리고, 아들 세대의 직설적인 사랑의 방식과 아비 세대의 은근한 사랑의 방식을 대비시킨다.
여기에 무대감독을 겸한 노래방 주인을 등장시켜 배우 개인의 사생활을 친근감 있게 섞고, 소극장 연극에 회전무대까지 수동으로 작동시키는 재치도 부렸다.
그러나 이 정도 만으론 아쉽다. 왜 이 젊은 극단이 자신들이 활동할 극장을 꼭 가져야만 했는지가 설명되진 않는다. 이미 확보한 레퍼토리를 상설 공연하고 자신들의 장기와 재능에 환호하는 팬들을 더 가까이 만나기 위해서?
1970년대 소극장은 검열 등 표현의 부자유로 위협받는 정치적 공간이자 미학적 실험의 발원지였다. 80년대 소극장은 한국연극을 관심 있게 지켜본 일본 연극평론가 니시도 고진(西堂行人)의 기록을 빌려 말하자면 현대연극이 잃어버리고 있는, ‘신체예술을 기반으로 한 파워풀한 연극이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90년대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거치면서 존폐 위기를 겪더니, 급기야 2000년대엔 소극장이 급격히 흥행공식만을 좇는 상업연극 독점의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제 개그 공연물들이 점령한 ‘오프 대학로’를 벗어나 ‘오프 오프 대학로’인 외곽에서 문을 연 소극장은 이와는 달라야 한다. 동시대 관객의 요구를 여흥거리 제공과 감동 제조 정도로 안일하게 정의해서는 안 된다.
관객과 직접 만나는 라이브 아트로서의 속성에 안주하여 젊음의 재능을 남용하는 것은 아깝지 않은가? ‘소극장 연극은 사멸하는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는 연극, 소극장 연극 정신에 치열한 연극을 그곳에서 보고 싶다.
극작ㆍ평론가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