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체이스의 베어스턴스 인수로 ‘제임스’라는 이름을 지닌 월가 두 거물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다.
1969년부터 몸담은 베어스턴스의 지분 5.8%를 보유, 2005년 포브스지 선정 세계 400대 부호 순위에 들 정도로 부와 명예를 누렸던 케인은 올해 초 15년 동안 유지해 온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내놓고 회장으로 물러난 데 이어 주말에 결정된 베어스턴스의 굴욕적 매각으로 자산이 1년 전의 100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케인은 베어스턴스가 투자한 헤지펀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부실채권에 투자해 큰 손실을 입고 결국 청산됐던 지난해 7월 가장 긴박했던 열흘 동안 뉴욕이 아닌 내쉬빌에서 브리지 대회에 참가하고 골프를 쳤다. 30대 시절 이미 전문 브리지 플레이어였고, 베어스턴스 입사 후에도 수십번의 전미 브리지 챔피언십에 참가해 십여 차례나 우승한 케인은 93년 CEO가 된 후에도 브리지를 중단하지 않았다.
‘도박사’ CEO의 도박적 리스크 관리는 결국 회사의 몰락을 자초했다. 베어스턴스는 최근 수년 동안 모기지 채권에 투자하고 헤지펀드에 대규모 대출을 해 주는 위험적 투자를 감행했고, 덕분에 2006년까지만 해도 커다란 수익을 얻었다. 그러나 미국 주택가격이 급락하고 모기지 채권의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파산 위기까지 몰렸다.
반면 10년 전 씨티그룹 내 권력 투쟁에서 샌디 웨일에게 밀려난 뒤 2000년 뱅크원 CEO를 거쳐 2004년 JP모건체이스에 합류, 2006년부터 이 회사 CEO로 ‘부활’한 다이몬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발 신용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이용하는 뛰어난 경영능력을 발휘, 미국 금융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로 떠올랐다.
JP모건체이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부실 규모가 30억달러 수준으로 작은 편이다. 덕분에 대부분의 미국 은행들이 자금난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베어스턴스를 인수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지난해 7월 케인이 브리지에 열중하는 동안, 휴가를 포기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태 해결에 주력했던 다이몬의 리더십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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