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민주당의 쇄신공천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을 비롯한 외부인사들에게 공천의 전권을 내맡긴 사상 초유의 실험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후한 편이다. 하지만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있는 법. 공천 과정을 찬찬히 되짚어 보면 민주당의 ‘불편한 진실’도 적잖게 드러난다.
공천 작업이 진행된 지난 한 달은 민주당에게 ‘죽다가 살아난’ 시기였다. 대선 참패 이후 존립 자체가 위협받던 처지에서 4ㆍ9총선 야풍(野風)을 자신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여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상대로 전면전을 펼칠 만한 체력도 회복했다.
물론 근저에는 ‘박재승 신드롬’이 있었다. 박 위원장은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할 거라던 예상을 깨고 금고형 이상의 부정ㆍ비리 전력자에 대해 예외 없는 공천 배제를 밀어붙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측 김홍업 의원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씨와 이상수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손학규 대표의 핵심 측근인 신계륜 총장, 박상천 대표 측 김민석 최고위원 등 내로라 하는 당내 인사들이 추풍낙엽이 됐다.
당내 반발이 거셌지만 박 위원장은 주저하지 않았다. 호남권 현역의원 30%를 서류심사 단계에서 걸러내겠다는 말도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지난해 대선후보로 나섰던 이인제 의원을 비롯해 수도권과 충청권 의원 6명도 추가로 탈락시켰다. 쇄신공천의 명분을 틀어쥔 박 위원장은 ‘원칙’을 앞세워 정치적 이해 관계의 벽을 정면으로 뚫어냈다.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던 한나라당의 일방적 총선 공천 구도에 변화가 감지됐다. 싸늘하게 등을 돌렸던 여론이 눈길을 주기 시작했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지층의 결집도 가시화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최대 격전지인 서울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는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인에 의한 개혁공천은 논란과 비판의 소지도 남겼다. 무엇보다 계량화의 함정에 빠지는 우를 범했다. 정체성을 의원총회 참여 횟수로 평가하고, 의정활동의 판단 기준을 본회의ㆍ상임위 참석횟수 및 법안 발의건수에 의존한 건 아마추어리즘의 전형이었다. 초경합지역의 후보자 결정을 현역의원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여론조사에만 의존한 것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내부의 해묵은 계파 갈등도 쇄신공천의 의미를 반감시켰다. 박상천 대표를 비롯한 구(舊)민주당계는 공심위의 권한을 전면부정하는 당규를 제출해 논란을 야기한 데 이어 공천 결과에 반발, 공개적으로 공심위를 부정하는 집단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박 대표는 특히 전략공천지역 선정 과정에서 자파 몫을 챙기기 위해 당무를 해태(懈怠)하는 등 ‘몽니’를 부리기도 했다.
총선기획단 핵심관계자는 “민주당으로선 외부인사들에게 공천의 전권을 부여하는 게 불가피했고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면서 “당내 갈등이 어떻게 번질지 모르겠지만 이는 전적으로 정치권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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