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6월8일 치러진 제7대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서울 종로는 특별한 인연을 가진 두 거물 후보의 대결로 화제를 모았다. 민주공화당의 서열 3위인 김성진(金晟鎭) 중앙상임위의장과 신민당의 서열 1위 유진오(兪鎭午) 당수. 두 사람은 경기고의 전신인 제1고보 1년 선ㆍ후배, 서울대 전신인 경성대학 동기였다.
경기고가 있었던 종로구 화동 이웃에 살았던 소꿉친구이기도 했다. 한 살 위인 김성진이 제1고보는 1년 위이나 경성대가 개교하는 해에 두 사람이 1회로 함께 들어갔다. 50년 이상 우정을 나눈 두 사람은 그러나 정치적으로 대결해야 하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 김성진이 먼저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유진오는 신민당 당수로서 전국구로 나설 수도 있었으나 당 사정이 그렇질 못했다. 고려대 총장이었던 그가 정계에 뛰어든 것은 6대 대선 직전.
정통 민주당의 갈래인 민중당 후보로 추대됐으나 신한당과 합당, 신민당이 되는 과정에서 윤보선에게 대통령 후보를 양보해야 했다. 대신 당권을 쥐었는데, 윤보선이 박정희에게 패배하자 정치 1번지에 출마해 바람을 일으키라는 당의 압력을 받았다. 요즘 용어로 전략 공천이었던 셈인데, 유진오는 이를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이다.
▦ 우정이 깨지는 것을 걱정했던 두 사람은 상대방 칭찬을 아끼지 않는 선거전을 펼쳤다. 전국적으로 금권 타락선거와 흑색선전, 비방이 난무하던 시절에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유 군은 평균 99점의 수재”, “김 군이 너무 잘 봐 주는 것”이라는 식으로 유 군, 김 군으로 호칭하며 서로 추켜세웠다.
이 우정어린 선거전을 우리나라 첫 시사주간지로 당시 낙양의 지가를 올리던 <주간한국> 은 ‘친애하는 적끼리의 상찬사(相讚辭)’라는 제목 아래 소개하기도 했다. 선거 결과 유진오가 승리했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금 가지 않았다. 주간한국>
▦ 그 정치 1번지 종로에서 경기고ㆍ서울대 선ㆍ후배가 또 맞붙는다. 민주당이 전략공천한 손학규 대표는 경기고 61회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의 9년 선배다. 손 대표는 서울대 정치학과, 박 의원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선거다. 손 대표에겐 당내 입지를 단단히 하며 차기 대통령으로 가는 토대다.
박 의원이 손 대표를 꺾는다면 일약 여당의 차기 대선후보 반열에 들 것이다. 절친한 사이기도 한 두 사람이 41년 전의 두 선배처럼 페어플레이를 펼치며 각박한 정치판에 미담 하나를 추가할 수 있을까.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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