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소요사태의 진원지인 시짱(西藏)자치구 성도 라싸(拉薩)는 17일 최후의 결판을 앞둔 듯 짙은 적막감에 휩싸였다.
APㆍAFP 등 외신들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선포한 자수 기간이 끝나는 이날 라싸는 증원 배치된 병력이 시가지를 장악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라싸 이외에 쓰촨(四川)성의 아바, 간쑤(甘肅)성의 여러 티베트인 밀집 지역 등에도 16일 밤부터 인민해방군 증원 병력이 트럭을 타고 도착해 배치되기 시작했다.
라싸의 티베트인들은 집안에 콕 박혀 나오지 않고 있다. 외신들은 돌과 불탄 차량들이 어지럽게 널린 큰 길은 물론 좁은 골목길에서도 인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전했다. 진압부대에 돌을 던지던 시민들은 집에 머물러 있거나 라싸 외곽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라싸에 있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제임스 마일스 중국 특파원은 "시위대의 함성이 잦아들었다. 20년 만에 터져 나온 가장 극적인 저항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오늘 밤 결전이 어른거린다. 시위대는 밤 12시까지 투항하거나 아니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더러 총성이 울리고 있으며 진압 경찰은 곤봉 대신 총을 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라싸 시민은 17일 밤 12시로 끝나는 자수기간이 지나면 무차별적인 검거 선풍이 불 것으로 보고 있다.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자수기간이 지나면 위법자들을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힌 것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인도의 티베트 망명정부는 긴급 호소문을 통해 "자수기간 만료후 후 학살사태가 우려된다"며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반면 라싸 시내의 대부분을 장악한 중국 당국은 사태 해결에 자신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사태 발생 이후 처음으로 이날 오전 국무원 신문판공실에서 긴급 회견을 갖고 "라싸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밤 늦게 두번째 회견을 연 류젠차오 대변인은 해외 16곳의 중국 공관 공격을 언급하면서 중국측 피해를 부각한 뒤 질서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밝혔다.
3일 동안 끊긴 라싸의 전력도 이날 공급이 재개됐다. 차이나 데일리 등 중국 관영 언론들은 16일 오후부터 시내 주요 도로변 일부 상점이 문을 열고 공무원들이 거리를 청소하면서 라싸가 조금씩 평온을 되찾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언론은 특히 티베트 시위대의 무차별적인 한족 공격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다. 시위대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한 부상자는 "우리 가족은 15일 2층에 숨어 있었고 시위대는 돌을 든 채 내 상점 문을 때려 부순 뒤 상점 안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며 "도망쳐 목숨을 건져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아내가 먼저 아래층으로 뛰어내린 뒤 나도 딸을 안고 뛰어내렸다"고 말했다.
현 소강상태는 18일 오전 시작될 관련자 검거의 양상에 따라 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위는 티베트 지역의 정치 중심지인 라싸 외에 간쑤, 쓰촨, 칭하이(靑海)성 등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라싸의 시위가 주춤한 16일 쓰촨성 아바에서는 티베트 승려와 주민 1,000여명이 동조 시위에 나섰고 란저우(蘭州)시 베이시(北西)소수민족대학에서는 학생 100여명이 연좌농성을 했다.
이는 티베트족의 45% 가량이 시짱 자치구 이외 인근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 합병 당시 티베트의 면적은 지금의 2배 이상이었으나 합병 이후 쪼개져 다른 성(省)으로 분배됐다. 따라서 인근 성에도 티베트족 밀집지역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시위가 라싸 이외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것은 89년 봉기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만큼 이번 시위가 고강도로 진행된 것이다.
■ 시위 희생자 진실 공방
티베트 유혈 시위의 희생자 수와 발포설을 두고 공방이 치열하다. 인도의 티베트 망명정부는 17일 시위 과정에서 수백 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중국 당국은 발포설을 전면 부인하면서 오히려 시위대의 폭동으로 민간인 희생이 컸다고 반박했다.
창바 푼콕(向巴平措) 시짱(西藏) 자치구 주석은 17일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최루탄 등 적법한 수단 외에 어떠한 살상용 무기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총성이 들렸다는 증언에 대해 "잘못 들은 것이며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창바 주석은 "티베트 시위로 지금까지 모두 16명이 희생됐는데 이중 13명은 시위대의 폭동으로 숨진 민간인"이라며 "경찰도 6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나머지 사망자 3명은 경찰의 체포를 피하려다 건물에서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폭도들은 무고한 민간인에게 기름을 부은 뒤 방화했으며 실신한 무장경찰을 흉기로 찌르는 등 매우 잔인했다"며 화살을 시위대의 폭력성으로 돌렸다.
반면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 측은 무장경찰의 발포로 수백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앞서 AFP통신 등 외신들은 시위 현장에서 총성이 울렸다는 목격자 증언을 보도했으며 특히 "16일 쓰촨성 아바 집회에서 시위대가 경찰차를 향해 불을 지르자 무장경찰이 발포, 최소 7명이 사망했다"는 구체적 증언까지 전했다.
중국 당국의 언론 통제로 진실 공방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중국에서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유투브 접속이 차단됐고 중국 언론들도 티베트 시위에 대해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외신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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