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앞. 창 넓은 쇼케이스 안에 르네 마그리트를 연상시키는 낯선 작품 두 점이 걸려있다.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이 작품들은 서른 한 살의 젊은 작가 차민영이 그린 유화 ‘협상의 이면(Beyond Negotiation) 1ㆍ2’. 갤러리현대가 신진작가들을 발굴ㆍ육성하기 위해 본 전시와 별도로 운영하는 윈도갤러리다.
# 2. 지난해 11월 문을 연 서울 청담동의 오페라갤러리. 화랑들이 대거 입주한 네이처포엠 건물 1층에 자리한 이 다국적 체인의 갤러리는 삼면이 통유리로 돼 있다. 밤이면 백화점 쇼윈도 못잖게 화려한 야경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이곳은 불과 몇 달 만에 강남의 명소로 떠올랐다.
윈도갤러리, 화랑가의 새 트렌드로
쇼윈도는 이제 백화점의 전유물이 아니다. 투명한 유리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행인들을 유혹하는 갤러리의 쇼윈도는 더 많은 눈길과 더 잦은 발걸음을 원하는 화랑들의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화랑들이 앞다퉈 윈도갤러리를 도입하면서 갤러리 밖으로 난 창 한 장은 이제 일상과 미술이 만나는 접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쇼윈도를 독립된 전시공간으로 활용한 화랑은 갤러리현대가 처음. 1995년 신관 건물을 신축하면서 신진작가들이 소통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쇼윈도 개념을 도입했다. 전시작가들은 아직 개인전을 갖지 못한 젊은 작가들이 주축.
이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갤러리와 팔판동 갤러리진선, 인사동 아트싸이드 등이 윈도갤러리를 운영하며 ‘길을 걷다 마주치는 미술’을 확산시키고 있다. 2005년 생긴 갤러리진선은 매년 공모를 통해 장르에 제한 없이 작가를 선발, 건물 측면에 위치한 세 곳의 윈도를 3주간의 전시공간으로 제공한다. 인사동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통유리 벽의 아트싸이드도 2004년 시작한 윈도갤러리를 올해부터 차세대 젊은 작가 10명을 선정, 소개하는 윈도프로젝트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오페라갤러리, 갤러리 선컨템퍼러리, 갤러리인 등이 별도 전시는 아니지만 대형 쇼윈도를 작품 전시공간으로 활용해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들 갤러리들은 전시장이 문을 닫은 야간에도 윈도의 조명을 환하게 밝혀 도시의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쇼윈도, 미술의 벽을 허물다
윈도갤러리는 해외에서는 흔한 전시기법이지만, 국내에는 뒤늦게 도입됐다. 하지만 홍보효과만큼은 확실하다. 갤러리 인의 황인성 큐레이터는 “멀리서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본 후 나중에 와서 작품을 사가는 고객이 있을 정도로 갤러리 홍보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며 “멀리서 봤을 때 눈에 잘 띄는 작품들을 주로 창가에 건다”고 말했다.
오페라갤러리의 김영애 실장도 “밤에 지나가면서 보신 분들이 다음날 낮에 다시 찾아오는 등 실제 반응이 매우 좋다”며 “갤러리 윈도가 미술을 어렵게 생각하시던 분들이 가까이서 보면서 친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 상하이 등의 화랑가를 가 보면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에서도 윈도갤러리가 세계적인 추세인 것을 볼 수 있다”며 “앞으로 국내 화랑들도 이런 식으로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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