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소식이 계속 날아왔다.
길종형이 편지를 보냈다. “나도 영화를 공부하고 있다. 네가 좋으면 해라. 이제 문학시대에서 영상시대로 변하고 있다.”
형은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이국생활에서 소수민족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스튜어디스가 일본사람이냐고 물었단다. 그는 “I am a great Korean.” 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를 ‘쫓아낸’ 고국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형은 프랑스생활이 너무 고독하여 한국인이 많이 사는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도 한국인 보기가 쉽지 않아 거리에서 동양인이 지나가면 가지고간 한국의 ‘사슴’ 담배갑을 버쩍 들어 한국인을 찾았다고 했다. 형은 미국에서 영화산업이 사회에 미치는 엄청난 힘을 확인하고 세계최고의 영화 명문대인 UCLA대학원 영화과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감독이 된 ‘대부’ 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UCLA출신), ‘스타워즈’ 의 조지 루카스 감독(USC출신) 등과 영화서클 활동을 하며 ‘한국유학생신문’을 발간하여 한국 유학생들과 교민사회를 연결하는 고리를 만드는 일로도 바빴다. 형이 한국을 떠나며 내게 말했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도망치지 마라! 극복해라.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도망자가 된다.”
이 말은 나의 40년 영화 인생, 아니 내 인생의 모토가 되었다. 모든 걸 던져버리고 싶은 난관이 앞을 가로 막을 때마다 나는 중얼거렸다. “도망자가 될 수는 없다!!” 형도 그랬다고 했다. 힘들 때마다 그 말을 새기고 또 새겼다고 했다. 형은 아득히 먼 이국땅에서 자기를 찾고 있었고 다시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영화를 통하여 반드시 한국을 정의사회로 구현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미친 듯이 공부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에선 대중문화가 삼류로 취급 받는다. 그래서 식구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네가 좋다면 목숨을 바쳐라.”
형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내가 바빠지기 시작하자 막내누나가 또 비상금을 털었다. 방송국과 가까운 퇴계로 묵정동에 하숙을 구해주었다. 나는 <다리> 에 출연하며 꼬깃꼬깃 모은 출연료를 몽땅 멋있게 쓰기로 하였다. 정든 미아리판자동네를 떠나기 전날 밤. 다리>
주인아줌마에게 ‘주인이 재판에 이겨 목장을 다시 찾게 됐다. 이제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동네 사람들을 모아 밤새 잔치를 벌였다. 우리 동네는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라 TV 수상기가 있는 집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막 뜨기 시작하는 탤런트’인지 아무도 몰랐다.
타이틀-<연화궁> . 첫 주연 작품이 등사실에서 제본되는 날이다. 자정이 지난 한밤의 등사실. 신입 탤런트들과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이 흑지 위에 열심히 원고를 베낀다. 검은 잉크를 묻혀 밀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대본이 쌓인다. 나는 그 광경을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3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도 저들처럼 밤잠을 못자고 남의 대본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 나의 운명이 걸린 데뷔작이다. 승부를 걸어야한다.’ 연화궁>
방송국은 나의 PR을 위해 잡지표지 촬영 등 준비에 바빴다. 양복과 와이셔츠도 ‘공짜’로 주었다. 기분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KBS가 야심차게 준비한 골든타임의 수요 연속극, 최대 스케일의 사극이다. 최고의 사극 작가 김영곤, 최고의 인기 연출가 고성원 PD (‘아씨’연출가), 거기에 초호화 배우진영이다. 그 한가운데 내가 있다. 나를 두고 삼각관계가 벌어진다. 동궁(왕세자)이 부왕이 지명한 여자(장소저)와 결혼하기를 거부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윤소저)와 궁에서 도망친다.
슬프고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이다. 윤소저역은 당대 최고의 인기탤런트 조영일(본명 조희자)씨(KBS 1기), 장소저 역은 김혜자씨가 맡았다. 김혜자씨는 KBS 1기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다 결혼 후 방송계를 떠났다가 <연화궁> 이 복귀 작이다. 대본을 읽어보니 거의 매 페이지마다 내 대사였다. 아찔했다. 현대물도 아닌 사극 대사를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연화궁>
그뿐이 아니었다. 포옹장면. 대선배 조영일씨를 포옹해야 한다. 그녀는 톱 탤런트에 교양국 K PD의 부인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감도 오지 않았다. 평소 좋아하는 이일웅 선배에게 매달렸다. 사극대사 특유의 ‘쪼’를 배웠다. 포옹하는 법도 배웠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첫 연습 날. 나는 조영일 선배를 안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조영일씨는 깔깔대며 좋아했다. “명종 씨, 왜 이렇게 떨어...” PD와 연기자들의 폭소가 터졌다. 나는 겁에 질려 그대로 붙들고 서 있었다. PD가 놀린다. “하하하... 안 되겠다. 영일씨가 안아 줘라.”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그녀 품에 안겨 있었다. 가슴만 퉁퉁 뛰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여자를 안아 본 적이 없었다. 김혜자씨. 그녀는 내가 ‘버리는’ 상대역이었다. 방송국에 몇 년 만에 돌아와 모든 것이 서먹하던 차에 어리버리한 나를 찜했다. 그녀는 골초 중에 골초였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담배를 핀다는 소문이 나면 큰일 날 때였다.
더구나 입방아가 가장 심한 방송국에서는... 나는 그녀의 분장실, 화장실 앞 보초병이 되었다. ‘이 분야는 내 전공 아닌가...’ 능숙하게 담배와 라이터를 넣어주고 밖에 서서 그녀가 꽁초까지 빡빡 빠는 얼굴을 생각하며 콧노래를 부른다. 여자 선배들이 지나가며 윙크를 보낸다.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든다. 마침내 첫 방송을 하는 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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