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이듬해인 2006년 장편 <백수생활백서> 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던 소설가 박주영(37)씨가 두 번째 장편 <냉장고에서 사랑을 꺼내다> (문학동네 발행)를 펴냈다. 수다한 소설에서 발췌한 구절들을 거멀못 삼아 한 자족적 백수의 ‘우아한 삶’을 그렸던 전작에 이어 박씨는 20대 후반 여성들의 다양한 연애와 결혼관을 요리를 매개로 흥미롭게 펼친다. 냉장고에서> 백수생활백서>
이야기의 축은 주인공 나영(‘나’)의 실연과 사랑이다. 나영은 요리와 홈 데코레이션을 좋아하는 것-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직업이기도 하다-을 빼면 평범한 취향과 무던한 성격을 지닌 인물. 그녀에겐 3년을 사귄 애인 ‘성우’와 오래된 남자친구 ‘지훈’-첫사랑이지만 지금은 친구 ‘유리’의 애인-이 있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두고 나영은 지훈과의 친분을 새삼 문제 삼는 성우와 다툼 끝에 헤어진다.
이별의 고통과 미련, 새로운 연애에 대한 두려움과 조바심이, 늘 둔하다는 지청구를 듣는 나영의 독백 대신 그녀의 입맛을 당기는 요리와 그 레시피를 은유삼아 드러난다. 일테면 이별 후 체중이 준 걸 확인한 후 “갑자기 성우가 지독히 싫어하던 프라이드치킨이 먹고 싶어”지고, 혼자 맞은 크리스마스에 만든 스펀지케이크를, “청산가리처럼 치명적인 독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남들은 꺼리는 푸른색 장식으로 마무리한다.
연애와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나영-그녀는 일찍이 부모님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이혼을 겪었다-의 주변엔 제가끔의 연애관과 결혼관을 지닌 기혼ㆍ미혼 친구들이 포진해 있다. 애인 아닌 남자친구만 불려나가는 ‘수진’, 지훈과 사귀면서도 궁핍한 제 처지를 구원해줄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는 유리, 10년간 첫사랑과 연애하다가 뜻밖의 이별에 곤혹스러워 하는 ‘은주’ 등등. 공감 가는 개성들이 “등장인물 각각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해둔 다음에야 스토리를 짜고 집필한다”는 작가의 노력을 증명한다.
20, 30대 젊은 여성의 연애ㆍ결혼을 다뤘다는 점, 그것을 요리에 빗대며 풀어나갔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언뜻 유사한 소재의 다른 작품들과 겹쳐 보인다. 하지만 박씨는 연애ㆍ사랑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지움으로써 이 작품을 여타 칙릿이나 풍속소설과 차별화한다. “시간이 지나도 그저 ‘2008년 젊은 여성들은 이랬었구나’라고 읽히지 않는, 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을 쓰려 했다”는 의지대로 작가는 연애와 결혼을 현실적 타산에 좌지우지되는 사회적 제도가 아닌,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을 솜씨 좋게 요리할 때 맛볼 수 있는 인생의 진미로 묘사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소설인 동시에 ‘요리책’이다.
나아가 <백수생활백서> 가 그랬듯, 이번 작품 역시 인간의 근원적 욕망에 관한 소설로 봐도 좋겠다.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면서 자아실현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사람들이 더 우습다”며 “나는 일하기 싫다”고 외치는 전작 주인공의 당당한 선언이, “사랑하는 삶과 결혼하고 그 약속을 평생 지키며 살아가는 운명”을 거역하지 않겠다는 나영의 비장한 다짐과 닮았다. 자기 정체성을 세태 변화에 동조시킨 재바른 현대인들이 포기해버린 욕망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작가는 “독자가 내 소설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밝고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게끔 하자는 착한 생각으로 작품을 쓴다”고 말했다. 백수생활백서>
글ㆍ사진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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