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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4> 미끈하다 - 찰흙의 유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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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4> 미끈하다 - 찰흙의 유동성

입력
2008.03.1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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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끈하다는 것은 미끄러울 정도로 거침새가 없다는 뜻이다. 막히거나 거치적거리지 않는다는 말. 나는 ‘미끈함’이라는 말에서 운우지락(너무 고리타분한 표현인가?)에 매두몰신(거푸 고리타분하군!)하는 두 육체를 떠올린다. 땀으로 흥건히 범벅돼 미끈거리는 육체를. 더 나아가, 결합된 성기의 발랄한 율동을 떠올린다. 점액으로 끈끈히 젖은 성기들을. 합쳐진 성기의 그 선드러진 움직임은 이내 온몸의 진저리로 마무리되리라.

미끈함은 점액질의 미끄러움이다. 미끄러움은 그저 유동성일 뿐이지만, 미끈함은 차진 유동성이다. 그것은 찰밥의 유동성이고, 찰떡의 유동성이며, 찰부꾸미의 유동성이고, 찰흙의 유동성이다. 흐름과 움직임의 날램에서 미끈함은 미끄러움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성애를 도발하고 갈무리하는 끈끈함에서 미끈함은 미끄러움에 크게 앞선다.

미끈함의 점액질 정도가 미끄러움보다 크다는 것은 그 끈끈함이 /ㄴ/ 소리 안에 담겨 있다는 뜻일 테다. /ㄹ/은 그저 흐를 뿐이지만(그득 찬 생기에 떠밀려 흐르고 또 흐르는 <청산별곡> 의 /ㄹ/을 떠올려 보라), /ㄴ/은 끈끈하게 흐른다. 성애의 신호가 왔을 때, 여성의 질(膣)은 미끈해지기 시작한다. 바짝 마른 질 속에서 남성은 질식한다. 그 거칠함 속에서 여성도 질색한다. 미끌미끌하기만 한 질 속에서 남성은 허우적거린다. 그 미끄럼 속에서 여성도 허망하다. 남성이, 그러므로 여성이 안온을 느끼는 것은 질이 미끈할 때다. 미끄러운 듯하면서도 끈끈할 때다.

사랑이 미끈하다는 것은 그것이 치명적일 수도 있고 활명적(活命的)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미끈함에 미끄러져 일상을 걷어차고 색의 나락으로 한없이 굴러 떨어질 때, 연애는 치명적이다.

그 미끈함을 일상의 끈끈한 생동으로 껴안을 때, 연애는 활명적이다.

미끈함은 성적 쾌락의 한 질료다. 그것은 거칠함의 폐색(閉塞)에도 미끌미끌함의 방종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덕이다. 미끈함은 평형이고 평상(平常)이다. 지나침과 모자람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중간지대. 그것은 또 조화이고 균제(均齊)다. 미끈함 속에서, 미끌미끌함과 거칠함은 균형을 이룬다. 그 아슬아슬한 균형이 성감(性感)을 활짝 열어제친다.

내 상상력 속에 성애의 질료로서 미끈함을 들이미는 고유명사 하나는 ‘그르노블(Grenoble)’이다. 그르노블은 프랑스 남동부 이제르강(江) 연변의 도시 이름이다. 철학자 콩디야크와 소설가 스탕달의 고향이기도 한 이 도시에 나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도시는, 내 마음 속에서, 축축하면서도 끈끈한, 곧 미끈한 질과 단단히 이어져 있다. 그르노블이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자음들, 특히 /R/ 소리와 /n/ 소리와 /l/ 소리 때문일 테다.

표준프랑스어의 /R/ 소리는 우리말의 /ㄹ/ 소리와도 다르고 영어의 /r/ 소리와도 다르다. 흔히 ‘후설후부구개음’이라 부르는 이 /R/ 소리는 혀끝이 아니라 목젖에서 난다. 한국어 화자 귀에 이 마찰음은 모자라게 터뜨린 /ㄱ/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넉넉히 문지른 /ㅎ/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양치질할 때 목을 가셔내는(흔히 ‘가글’이라고 하는) 소리에서 힘을 좀 빼면 이와 비슷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R/ 소리는 내게 질 속의 은밀하고 바특한 액체성을 연상시킨다. ‘그르노블’ 속에서 그 /R/ 소리가, 이어지는 /n/과 /l/ 소리와 어울려, 미끌미끌하지도 거칠하지도 않은 미끈함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설핏 라텍스의 감촉과도 닮았다. 다시 한 번, 그르노블은 미끈한 질이다. 그러나 나는 그르노블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거침새 없이 미끄러운 듯하다는 뜻말고, ‘미끈하다’에는 생김새가 훤칠하고 말쑥하다는 뜻도 있다. 거친 것의 반대편에 있다는 점에서, 그 두 뜻은 서로 통한다. “존 쿠삭이라는 남자 참 미끈하게 생겼군”에서처럼 사람에 대해서도 쓰고, “그 여자 종아리 미끈하던데”나 “미끈하게 자란 참나무”에서처럼 신체부위나 사물에 대해서도 쓴다. 이럴 때 ‘미끈하다’는, 성적 함축이 담겼든 그렇지 않든, 긍정적 뜻빛깔의 말이다.

그러나 그 첩어(疊語) ‘미끈미끈하다’는 사람의 생김새에 대해 쓰지 않는다. 사람의 행태에 대해선 쓸 수 있지만, 그 뜻빛깔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 친구 노는 꼴이 왜 그리 미끈미끈해?”에서처럼 말이다. 이 때 미끈미끈하다는 것은 느끼함과도 통하는 것 같다. 요즘 활동이 뜸한 희극배우 리마리오의 캐릭터가 미끈미끈함에 닿아있었다. 미끈미끈함도 미끈함처럼 점액질의 미끄러움이지만, 끈끈함의 이미지가 미끈함에서보다 더 짙다. 기름기 있는 미끈함이 미끈미끈함이다.

‘미끈하다’에 미끄럽다는 뜻이 이미 들어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 タ?알 수 있듯, 이 두 말은 가족이니 말이다. 한국어 화자라면 그 가족 구성원을 얼마든지 더 헤아릴 수 있다. 미끈둥하다, 매끈하다, 매끈매끈하다, 매끈거리다, 매끈둥하다, 매끄럽다, 미끄러지다, 미끄러뜨리다, 매끄러지다, 미끌미끌하다, 매끌매끌하다, 밋밋하다, 맨들맨들하다(표준어로 인정되고 있진 않으나) 같은 말들.

얼음판을 지치거나 눈 덮인 비탈길에서 미끄러지는 놀이는 미끄럼이고, 미끄럼놀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든 놀이기구는 미끄럼틀이다. 미꾸라지나 미꾸리 같은 말도 한 가족이다. 미끌미끌한 물고기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일 테다. ‘미꾸라지 같은 놈’은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 붙잡거나 책임을 지우기 어려운 사람을 가리킨다. 유럽어 화자들은 이런 사람을 미꾸라지가 아니라 뱀장어(영어 eel, 프랑스어 anguille)에 비유한다. ‘반들반들하다’도 의미적 형태적으로 ‘미끈하다’ ‘미끄럽다’의 먼 친척일 테다.

‘미끈하다’ ‘미끄럽다’와 한 가족을 이루는 이 말들은 어원적으로 동사 ‘만지다’와 ‘문지르다’에 이어져 있다. 거푸거푸 만지고 되풀이 문지르면 미끈해지고 매끄러워진다. 맨들맨들해진다. 그것은 성행위의 전희(前戱)에 대응한다. 언어의 인과(因果)가 물상(物象)의 인과와 다르지 않음을 알겠다.

꼭 좁은 의미의 성행위가 아니더라도, 만지는 것은 사랑 행위의 처음이자 끝이다. 나이가 육체에서 열정을 뽑아버린 뒤에도, 우리는 사랑을 실행할 수 있다. 연인의 손과 뺨을 만짐으로써. 정인(情人)의 종아리를 문지름으로써. 그 때, 그 손과 뺨과 종아리는 매끈거리고, 매끄러워지고, 맨들맨들해진다. 사랑으로 부푼다.

‘미끄럽다’의 의미적 형태적 상대어는 ‘껄끄럽다’다. 거칠다, 까칠하다, 깔깔하다, 거스르다, 거슬거슬하다, 꺼리다, 거꾸러지다, 거꾸러뜨리다 같은 말들이 그 가족이다. ‘미끄럽다’가 순행(順行)의 형용사라면 ‘껄끄럽다’는 역행(逆行)과 전도(顚倒)의 형용사다. 역행을 곧이곧대로 드러내는 부사 ‘거꾸로’가 이미 ‘껄끄럽다’와 한 가족이다. 까끄라기(꺼끄러기)나 거스러미나 가시도 마찬가지다. 까끄라기를 거꾸로(거슬러서) 쓸(어루만져 문지를) 때 느끼는 감각이 껄끄러움이다. 큰돈을 받은 뒤 거꾸로 되돌려주는 잔돈이 거스름돈이다. (이 그럴싸한 풀이는 이남덕 선생에게서 얻어온 것이다.) 까끄라기나 가시처럼 껄끄러운 장애물이 없을 때, 사랑은 거침없이 매끄러워지고, 미끄러지며 앞으로 나아간다.

‘거짓(말)’도 ‘껄끄럽다’와 어원적으로 한 가족이다. 거짓말은 거친 말, 거스른 말이다. 그 거스른 말을 미끈하게, 매끄럽게 하는 것도 연애의 비결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껄끄러움의 살을 매끄러움의 천으로 둘러싸서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 곧 거짓말을 능숙하게 하는 것은 기실 연애 못지않게 정치나 장사의 기술이다. 그게 별난 일은 아니다. 정치나 장사라는 것은 가장 넓은 뜻의 사랑을 획득하는 일이니 말이다. 표를 얻는 것, 상품을 팔려 애쓰는 것은 사람들의 호의를 얻는 행위다. 그것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사랑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사랑이라는 현상의 생물적 기초가 참으로 허접스러움을 알겠다. 쓸쓸하다.

미끄러지는 것은 구르는 것과 다르다. 바퀴의 발명은 미끄럼마찰(sliding friction)을 굴림마찰(rolling friction)로 변화시킨 인류사의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바퀴가 등장한 이후에도, 접촉하는 물체들은 미끄러뜨리고 미끄러졌다. 물체만이 아니라 삶도 미끄러진다. 그러면서 구른다. 삶처럼 사랑도 미끄러지면서 구른다. 미끄러우면 넘어지기 쉽고, 넘어지면 구르기 쉽다. 나동그라지기 쉽다.

사랑이 미끈하다는 것은 그것이 치명적일 수도 있고 활명적(活命的)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미끈함에 미끄러져서 일상을 걷어차고 색황의 나락으로 한없이, 덧없이 굴러 떨어질 때, 연애는 (어쩌면) 치명적이다. 그 미끈함을 일상의 끈끈한 생동으로 껴안을 때, 연애는 (어쩌면) 활명적이다.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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