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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의 책 읽기 대가들이 말하기를…"천천히, 그리고 뜨겁게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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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의 책 읽기 대가들이 말하기를…"천천히, 그리고 뜨겁게 읽어라"

입력
2008.03.1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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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방법'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ㆍ김효순 옮김문학동네 발행ㆍ220쪽ㆍ1만원

■ '열렬한 책읽기' 한샤오궁 지음ㆍ백지운 옮김청어람미디어 발행ㆍ456쪽ㆍ1만8,000원

일본과 중국의 실력있는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33)와 한샤오궁(55)의 신간은 모두 책에 관한 것이다. 차이는 제법 크다. 히라노씨는 현대사회의 권장 독서법인 속독(速讀) 대신 지독(遲讀) 혹은 슬로 리딩(slow-reading)을 권하면서 그 방법을 세세히 전하고, 한씨는 책을 매개로 사회문화 전반에 대한 자기 사유를 펼친다. 전자가 ‘실용서’라면 후자는 ‘문화비평서’다.

서문에 “천천히 시간을 들이면 독서는 즐거워진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라고 할 수도 있다”고 적은 히라노 씨의 책은 기초편ㆍ테크닉편ㆍ실천편의 교재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형식만 그런 게 아니다. 이 ‘소설가 선생님’의 가르침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다. 아주 자신만만하다. 특히 테크닉편에서 제시한 열댓 개의 지침을 직접 문학작품 독해에 적용하는 실천편을 읽다보면 까다로운 수학문제를 눈앞에서 명쾌하게 풀어주는 과외교사가 절로 연상된다.

저자가 제안하는 슬로 리딩의 골자는 꼼꼼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작가의 진의(眞意)를 정확히 밝혀내자는 것. 다층적 의미를 내포하는 작품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카프카의 단편 <다리> 를 분석할 땐 “소설을 읽는 방법에 정답은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라도 그는 문장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미진함이 최소한으로 졸아들 때까지 분석하고 추론한다.

박학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따지면 창작자의 숨은 의도가 드러난다는 것이니 일반 독자라면 따를 만한 방법이다. “작자에게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독자의 의문이나 반론에 대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등 자신의 창작 경험에 비춰 일러주는 내용도 눈에 띈다(저자는 책 말미에 자기 장편 <일식> 의 창작 의도를 자세히 설명하기도 한다).

슬로 리딩의 가치를 밝히는 기초편엔 오늘날 정보 과잉 문명에 대한 저자의 비판의식이 또렷하다. 그는 속독을 통해 책을 단시간에 많이 읽었다고 자랑하는 풍토를 ‘빨리 먹기 대회’에서 실력을 자랑하는 이들과 다를 바 없다고 일축하며 “독서량은 슬로 리딩이 가능한 범위로 충분하며, 그 이상은 무의미하다”고 단언한다. 양에서 질로, 망라형에서 선택형으로 독서법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프로 독서가’를 자처하는 저자의 제언이다.

작년 말 <마교사전> 으로 국내에 첫 소개된 한씨는 80년대 심근(尋根ㆍ뿌리찾기) 문학을 주창-그 선언문으로 평가받는 글 ‘문학의 뿌리’가 이번 책에 수록됐다-해 중국 문단의 흐름을 바꾸는 등 지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80년대~2000년대 발표한 산문이 묶인 1부에서 저자는 동양-서양, 문학-철학-사회과학을 폭넓게 횡단한다. 서양 사상가만 따져봐도 아리스토텔레스 칸트부터 헤겔 마르크스 토인비 바르트 푸코 사르트르 그람시를 거쳐 헌팅턴 후쿠야마까지 두루 섭렵한다.

한씨는 이 광대한 지식의 역사에서 양질의 책을 골라내고, 거기서부터 논의를 출발한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등장인물 ‘사비나’의 외침, “나는 세속적인 것이 싫어!”를 인용하며 사회와 역사의 “변증법적 아포리아와 이율배반의 아이러니”를 살피고, 소동파의 시에서 ‘비굴한’ 도연명과 ‘광분하는’ 니체 사이, 건강한 반(反)세속주의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저자의 도저한 학식과 다방면의 관심사는 일관된 변증법적 사유틀 속에서 질서를 잡는다. 그는 상반된 입장의 어느 편도 들지 않고 각각을 분석ㆍ종합하며 한걸음 나아간 생각에 제시한다.

2부엔 저자와 쑤저우대 왕야오 교수와의 2002년 네 차례에 걸친 인터뷰가 실렸다. 기호, 언어, 역사, 문학을 주제로 한 인터뷰에서 저자는 대중매체의 도덕성 위기를 지적하고, 각 언어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짚으며 언어 다양성을 지지하는 등 오늘날 세계적 현안에 대해 명쾌한 의견을 제시한다. <마교사전> 을 비롯한 대표 작품의 창작 의도를 직접 설명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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