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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블랙홀 이야기' 그의 '외딴별'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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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블랙홀 이야기' 그의 '외딴별' 일생

입력
2008.03.1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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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I 밀러 지음ㆍ안인희 옮김 푸른숲 발행ㆍ540쪽ㆍ2만5,000원

“이 세상에서 내 운명은 내게 친절하지 않았다! 난 어디로 갈까? 가서 산속을 헤매며 내 고독한 마음에 휴식을 찾으리.”

심장발작과 우울증에 빠져있던 인도 출신의 한 미국물리학자는 1976년 일기장에 구스타브 말러의 유명한 ‘대지의 노래’ 의 한 구절을 적는다.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출신이라는 이유로 학계에서 오랫동안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아야 했던 자신의 생애에 대한 회한을 드러낸 것이다.

<블랙홀 이야기> 는 인류의 영원한 관심사인 별의 탄생과 소멸에 관한 가장 독창적이고 대중적인 이론인 ‘블랙홀’ 이론을 창안한 물리학자 수브라마니안 찬드라 세카르(1910~1995)의 영광스러웠지만 고통스러웠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인도의 귀족계급인 브라만 출신으로 10대부터 물리학 서적에 나오는 방정식을 소설처럼 읽었던 찬드라는 케임브리지대로 유학을 떠나던 스무살 무렵 ‘별의 운명’에 관한 획기적인 이론을 세운다.

별들은 환하게 빛나다가 난쟁이별이 되고 연료를 다 태우고 나면 작고 밀도가 높은 ‘하얀 난쟁이별’로 최후를 맞이한다는 것이 당시 천체물리학계의 통설이었다.

찬드라는 질량이 큰 별은 하얀난쟁이별이 될 수 없으며 폭발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이론을 발표하지만, 곧 평생에 걸쳐 자신의 이론에 훼방을 놓는 숙적과 대면하게 된다. 그는 별의 질량과 밝기에 관한 이론을 완성했으며, 1919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실증하는 탐험으로 명성을 얻은 당대의 거물 천체물리학자 아서 스탠리 에딩턴(1882~1944).

에딩턴은 찬드라가 케임브리지로 유학온 초기 최신 계산기를 사주는 등 호의를 보였지만 정작 권위있는 영국천문학자들의 회합인 1935년 1월의 영국천문학회 모임에서 “별들은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평화로운 죽음을 맞으며 찬드라는 구더기 깡통의 뚜껑을 열었다”며 공개적으로 찬드라를 비난하며 궁지로 몰아 넣는다.

책은 이후 서구 과학계가 식민지 출신의 유색인이라는 이유로 어떻게 한 명민한 과학자를 절망에 빠뜨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적으로는 그의 이론에 동의하는 많은 동료들도 학계의 거물인 에딩턴과의 관계를 고려, 결코 공식적으로 찬드라를 두둔하지 않았다.

이후 냉전시기인 1960년대 핵무기를 개량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론이 빛을 발하기까지 찬드라는 철저히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아야 했다. 결국 그는 1983년 70세가 돼서야 노벨상을 받지만, 당시 스톡홀름이 수상 이유로 밝힌 찬드라의 이론은 이미 1930년대 그가 발표했던 이론들이었다.

책은 고대로부터 인류의 관심사였던 ‘별들의 운명’의 비밀을 해명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흥미롭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편견이 과학자에게 주는 재앙이란 어떤 것인지, 진실이나 양심보다는 권위에 맹종하는 이들이 많을 때 과학은 어떻게 잘못될 수 있는지를 실감나게 증언한다. 저자는 런던대 과학철학교수. 원제 ‘Empire of stars’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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