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안에서 주체적 국민으로 살려면
[논제]
제시문 (다)에서 겔렌과 아도르노가 제시한 주장과 근거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포함해 두 사람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종합하면서,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논하고, 그리고 나아가 제시문 (나)에서 언급된 ‘시민운동’의 가치에 대해 논하시오. (1,500자 내외)
단, 이 과정에서 다음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1)제시문 (가)의 입장에서 글을 전개하도록 한다. (2) ‘주체성’ 또는 ‘자율성’의 개념을 반드시 사용하도록 한다.
[제시문]
(가) 사회 계약설은 ‘국가가 어떻게 발생하였으며, 국가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과 관련해 국민의 동의라는 측면에서 답을 구한다. 즉 국민은 자유롭고 평등한 계약을 통해 국가를 구성하고 국가에 권력을 위임한다는 점에서 권력의 행사에는 국민의 자발적 동의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과서 [정치]
(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추진 운동은 위에서 살펴본 우리 사회 시민사회운동의 특징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계급관계의 본질적인 변화라는 이상적인 목표보다는 전 국민의 기초적인 생활의 보장이라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목표를 설정했으며, 따라서 운동의 방식에 있어서도 합법적인 공간에서 합법적인 방식으로 제도적인 개혁을 추구했다. 또한 운동의 주체에 있어서도 역시 계급관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일반 시민들을 설득하고 홍보해 동참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운동이 이루어졌다.
기존에는 법의 제‧개정이 일반적으로 행정부가 정책을 입안하면 집권당을 중심으로 국회에서 심의하고 의결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반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의료보험 통합, 의약분업 등 최근에 이루어진 사회복지제도 개혁은 시민사회단체가 이슈를 선점한 가운데, 안건의 형성에서부터 정책적 대안의 제시에 이르기까지 시민사회단체가 주체가 되어 집권당과 공조를 형성하며 법제정을 성사시키고, 이의 시행을 행정부에게 요구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방식의 법제정은 우리나라 사회복지 역사에서 흔히 찾을 수 없는 매우 독특한 형태로, 앞으로 전개될 우리나라 사회복지 제도개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문진영, [NGO의 역할]
(다)아도르노: 오해하지 마십시오. 나 역시 어떤 점에서는 제도를 옹호합니다.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 해결의 열쇠는 인간을 지배하는 제도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것 같습니다.
겔렌: 좋습니다. 어디 봅시다. 우리는 어쨌든 논쟁점을 찾아야 합니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안전의 관점을 중요시하는 편입니다. 제도는 인간이 스스로 멸망할 수도 있는 것을 막고 인간이 서로 해치는 것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유는 제한되지요. 그러나 혁명가들은 계속 있었습니다.
아도르노: 당신이 강조하는 것처럼, 인간이 제도 아래에서 갖는 책임이란 순응과 복종의 형태를 띨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듯이, 인간이 자기실현의 가능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책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잠재해 있는 인간 실현의 가능성을 방해하는 것에 맞서는 것이 책임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제도에 대한 순응은 인간을 심각하게 기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지요. 인간의 잠재력은 제도에 의해서 억압되고 불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겔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연배이고, 다 같이 네 번의 정부 형태, 세 번의 혁명, 두 번의 전쟁을 겪었지요. 그 동안 많은 제도가 무너지고 없어졌습니다. 그 결과는 인간의 전반적인 내적 불안정입니다. 내적인 동요지요. 이 사실은 이제 명백하고 공개적인 것이 되었지요. 제도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에 나는 찬성입니다. 인간은 제도를 어느 정도 개선할 수는 있지만 새로 시작할 수는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고, 그 대가로 상당히 많은 제약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도르노: 그건 나도 인정합니다. 내 견해는 다만 그로부터 얻은 성과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오늘날 기계 장치의 한 부속품이지 자신을 지배하는 주체가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인간이 더 이상 쓸모없는 부속품이 되지 않도록 세계가 이루어지고, 인간을 위해서 제도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지, 인간이 만든 제도를 위해서 인간이 존재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도가 인간 본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말만으로는 별로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겔렌: 엄마의 앞치마에 몸을 숨기는 아이는 불안과 동시에 다소간의 안전을 느낍니다. 당신은 물론 성숙의 문제를 논하려 하겠지요. 우리가 자유롭기 위해, 당신은 기본적 문제에 대한 결정을 제도에 맡기기보다 인간 스스로 하게 하고,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삶의 과오를 감수하도록 모든 인간에게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아도르노: 그렇습니다. 나는 객관적인 행복과 객관적인 절망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한, 이 세계 내에서의 안녕과 행복은 하나의 허상임을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깨어질 때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그렌츠, [아도르노의 철학] 중 ‘A.겔렌과 T. 아도르노의 논쟁’
*제시문, 제시문 분석 및 논제 분석의 전문은 EBSi 논술방(www.ebsi.co.kr)에 게재
[제시문 분석]
(가)사회 계약론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통해 국가의 성립은 국민들 스스로의 자발적인 동의의 산물임을 말하고 있다.
(나)시민운동단체가 벌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추진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사회복지정책의 실현에 시민운동이 미치는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시민운동은 국가의 틀 안에서 합법적인 수준에서 전문가들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며, 시민운동단체는 주체적, 능동적으로 행정부의 정책 결정 방향을 이끌어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해 제도개혁을 이루어내고 있다.
(다)A.겔렌과 아도르노의 논쟁의 일부이다. 두 사람은 모두 제도가 일종의 강제성을 지닌 권력이며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점차적으로 변화한다는 점, 그리고 현 단계의 인간들 간의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가 제도에 대해 내려야 할 결단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견해가 다르다. 겔렌은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신념에 기반하여 현행 제도의 한계에 대해 관용적이며, 그것을 현실적으로 수용하며 제도를 고수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좀 더 과격한 비판을 펼친다. 그는 오늘날 제도는 인간을 이롭게 하는 본래의 가능성을 발휘하기보다는, 인간을 지배하여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시키며 잠재해 있는 인간 실현의 가능성을 방해하므로 우리가 먼저 제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논제 분석]
제시문 (다)를 통해 국가(제도)의 필요성을 정리하고, 국가 제도의 강제성속에서 타율적인 존재로 전락한 채, 무비판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태도를 비판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문제다. 제시문 (다)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제시문 (가)를 참고해 국가 내의 ‘자율적인 국민’이라는 긴장감 있는 균형점을 발견해 내는 것을 도우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논의가 다소 추상적이기 때문에 제시문 (나)를 통해 그 균형점에서 우리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볼 수 있도록 하는 문제다.
[논제에 대한 접근 방식]
우선 제시문 (다)에 나오는 겔렌과 아도르노의 견해를 각각 정확히 이해해야 하며, 이들을 종합해 우리가 국가 제도 내에서 타율적인 존재로 전락할 것이 아니라 주체적ㆍ자율적ㆍ능동적인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이끌어내도록 한다. 이 입장은 제시문 (가)의 견해와도 맞아 떨어지며, 제시문 (나)의 예시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이 논제는 자신의 입장을 정립한 뒤, 제시문의 내용들을 어떻게 배분하여 흐름이 자연스러운 글을 쓸 것인가만 고민하면 된다.
[예시 개요]
1)도입: 제도의 가치( 겔렌의 입장을 바탕으로)
2)전개: 우리를 억압하는 제도의 속성
3)발전: 제도를 부정하는 입장과 아도르노의 비판의 비교: 인간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로서 이해되어야 함
4)결말: 현실적 대안(항상 자율적이고 정의로운 태도로 국가 틀 안에서 국가 제도에 대한 감시와 참여가 필요함. NGO가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음)
염재철ㆍEBS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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