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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 뚜껑 열고 보니 '무풍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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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 뚜껑 열고 보니 '무풍지대'

입력
2008.03.1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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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의 부도덕성과 기업 비리를 낱낱이 폭로하겠다는 일부 소액주주와 시민단체의 협박으로 잔뜩 긴장했는데, 막상 주주총회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 천만 다행입니다.(H사 K전무)” “3년 전 경영권이 위협 받았던 기억으로 우려감이 컸으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반대 세력이 없는 무풍지대여서 일사천리로 주총을 끝냈어요.(S사 L상무)”

본격적인 ‘주총 시즌’이 시작됐다. 14일에만 현대자동차, LG전자, SK㈜, SK에너지, SK텔레콤, 현대건설, 현대모비스, KTF, 아모레퍼시픽, 풍산 등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150개와 코스닥시장 상장법인 59개 등 총 209개사가 주총을 열었다.

현대차와 SK에너지는 정몽구 회장과 최태원 회장을 등기이사로 재선임했고, LG전자 남용 부회장은 이례적으로 단상에 올라 직접 마이크를 잡고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사업전략을 설명했다.

이날 오전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현대차 주총은 시작과 함께 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최근 “정몽구 회장이 분식회계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는 등 도덕적 문제가 있다”며 등기이사 재선임을 공개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측은 국민연금공단의 공세에 대비해 시나리오별로 치밀한 대응전략을 준비했지만, 정작 주총이 끝날 때까지 국민연금 관계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국민연금 측은 이날 주총에 직접 참석하지 않은 채 서면으로만 반대의사를 제시했고, ‘안티(Anti)’가 빠진 현대차 주총은 정 회장의 등기이사 재선임 안건을 이의제기 없이 일사천리로 가결했다.

최병협 현대차 우리사주조합장이 “올해 임단협 논의 과정에서 자사주 출연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조용하던 주총장이 한때 술렁이기도 했으나, 김동진 부회장은“여기에서 거론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한 소액주주는 “주총이 무슨 짜고 치는 고스톱이냐. 직원을 동원하는 관행이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SK㈜와 SK에너지가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개최한 주총장 분위기도 3년 전 소버린 사태 당시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날 주총장을 가득 메운 주주들은 대다수 안건을 반대의견 없이 박수로 통과시켰다. 한 소액주주가 최근 주가하락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으나 대세를 돌려놓지는 못했다.

특히 3년 전 소버린의 입장을 대변했던 미국 투자자문사 ISS거버넌스서비스 측은 “최태원 회장이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을 하고 있고, 시가총액을 높이는 등 성과가 좋다. 사외이사가 사내이사보다 많아 투명경영을 하고 있다”며 최 회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LG전자 주총은 기업설명회(IR)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진행으로 눈길을 모았다. 취임 1주년을 맞은 남용 부회장은 직접 단상에 올라 파워포인트로 지난해 사업실적과 올해 사업전략을 15분 동안 주주들에게 설명했다. KTF와 현대모비스도 이날 주총을 열고 김영진 서울대 교수(경영학과)와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을 각각 사외이사와 등기이사로 재선임했다.

21일에는 두산인프라코어 등 12월 결산 상장법인의 33.1%인 540개사의 주총이 열려 정점을 이룰 전망이다. 특검 수사를 받고 있는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28일 일제히 주총을 연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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