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히 렌츠 지음ㆍ박승재 옮김 프로네시스 발행ㆍ392쪽ㆍ1만5,000원
“취직 지원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부각되는 것은 이력서 위에 붙은 작은 사진이다.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그 사진은 신호를 보내 심사위원의 마음을 조종한다.”
1990년대말 독일에서의 사례다. 비슷한 시기, 미국의 한 도시에서 있었던 실험은 어떤가? “여자 종업원들이 6주 동안 올린 매상과 팁 수입을 기록하게 했다. 물론 그들을 아름다움의 정도에 따라 여러 등급으로 나눈 연구자들은 팁의 액수가 그들의 미모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한편 남자 종업원들의 경우는 친절과 정중함이 관건이었다.”
독일의 의사이자 과학 전문 작가인 저자는 느낌표까지 찍어가며 하나의 예를 제시한다. “1조1,350억 유로에 달하는 독일의 노동 수입에서 매년 1,000억 유로 이상의 돈이 아름다움을 조건으로 하여 재분배되고 있다!”고. 2004년 발표된 책은 말한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실제 능력 면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조금도 놀랍지 않게도(!) 미인들이 임금을 더 많이 받는다.”
물론 한국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취업과 결혼에다 이제는 나이와도 상관없는 성형 붐에다 ‘육체=자본’이라는 등식이 당연시 되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는 외모의 신화가 일상을 지배한다.
책의 가설대로 “어려운 시대일수록 성숙함이 트렌드이며, 경제적으로 호황인 시대일수록 아이 같은 타입이 더 인기를 얻는다”는 가설을 하나 제시한다. 최근 한국에 불어 닥치고 있는 꽃미남 현상과 관련해서 들을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1998년 유럽인과 일본인을 대상으로 행한 실험에서 그들은 여성스러워 보이는 남성의 얼굴에 보다 많은 클릭을 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탐하는 데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지적인 남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며, 높은 지위에 있는 남자는 아름다운 아내를 얻으며, 아름다움과 지성은 유전된다는 이른바 ‘좋은 유전자 가설’이다.
그것은 다분히 실질적인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잘 생긴 남자나 예쁜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남보다 더 많은 신용 자본을 소지하는 셈이다. 광고에 예쁜 사람들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아름다움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비를 자극한다.”(239쪽)
아름다움에의 욕구는 이성을 비웃는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속눈썹이 천대 받았고, 중세 때는 윗입술보다 아랫입술이 강조된 작은 입이 환대됐다. 문화에 의한 ‘사회적 프로그래밍’은 진화론이나 유전적 프로그램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책은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의 50%는 취향의 문제라고 규정한다.
보편적 미라는 문제를 바라보는 책의 시선은 그래서 회의적이다. 유행은 항상 메시지를 전달한다. 모든 언어들처럼 사회적 아름다움의 언어도 끊임없이 변하는 유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문화적 허식, 제 눈의 안경이기 십상인 아름다움의 법칙과 원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미국 텍사스대의 발생심리학자는 석 달에서 여섯 달 사이의 젖먹이 아이들에게 매력 정도가 다른 여학생들의 얼굴을 보여주고 눈동자 움직임을 관찰했다. 어른들이 가장 예쁘다고 평가한 얼굴을 젖먹이들이 가장 오랫동안 쳐다봤다는 실험 결과에 실험자도 놀랐다. 그러나 자기 엄마는 아름다움의 여부와 관계없이 가장 오래 쳐다봤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인류의 이성적 능력에 대한 믿음을 무력화시킬지 모른다. 독일에서 사이버네틱스를 연구해 석사 학위를 받은 옮긴이 역시 “책속의 무수한 실험 자료들은 겉모습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말이 결국 허위 아니면 위선임을 말해 준다”며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털어놓는 것 같아 차라리 후련한 심정”이라고 한다.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사이버네틱스를 전공한 저자는 “아름다움이란 완벽한 도식이나 형태에서 벗어난 모습”이라며 “지켜보는 눈을 자극해야만 한다는 최대의 전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미와 추 사이의 경계는 항상 유동적이고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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