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눈(目)으로부터 왔다. ‘파릇한 새싹과 봄꽃의 싱그러움’ 같은 진부한 표현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빌딩 숲 도심에서도 완연한 봄빛이 온몸으로 흡수된다. 화사한 색채의 옷과 액세서리가 여심을 사로잡고 있는 까닭이다.
한동안 검정과 흰색으로 일관했던 색채 동향이 장식성을 강조하는 맥시멀리즘의 영향으로 총천연색의 향연으로 돌아서리라는 것은 이미 전문가들이 예고했던 올 상반기의 트렌드.
하지만 대중의 자기표현 욕구가 커지고, 치열한 디자인 경쟁으로 색상 변화에 집중하기 시작한 의류업계의 속내 덕분에 패션쇼 런웨이 뿐 아니라 거리에도 ‘팝 컬러’(발색이 좋은 원색)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빨강 노랑 파랑 등 교통신호등에 쓰이는 채도 강한 원색도 촌스러운 색상으로 취급되던 데서 벗어나 적절한 코디 원칙만 지킨다면 단연 트렌드 리더의 선택이 될 수 있는 게 요즘이다.
■ 레드는 더 강렬하게
최근 몇년간 계속되고 있는 복고 패션의 유행으로 주목받은 레드 컬러는 올 봄 더 화려해지고 대담해졌다. 빨간색의 인기는 패션 경향의 척도인 스타들의 레드카펫 의상에서도 감지됐다.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주요 부문 수상자 또는 시상자로 나선 여배우들은 대거 빨간 드레스를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레드카펫 위의 붉은 드레스는 오랜 금기를 깬 것으로 그만큼 레드 컬러가 각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타일리스트 심우찬씨는 “빨강은 여성이 가장 섹시하게 보일 수 있는 색상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배우들이 붉은 드레스를 입은 것은 올해 초 패션계를 은퇴한 세계적인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에 대한 오마주로 보인다”면서 “최근 파리와 뉴욕 컬렉션에서는 소위 ‘발렌티노 레드’로 불리는 선홍색에 대한 집중 조명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다만 빨강은 전체 옷차림에서 한 가지 정도 아이템에만 적용하는 게 좋다. 이선화 신원비키 디자인실장은 “단순한 디자인에 색상만 살리는 스타일을 선택하되 빨강이 너무 강렬해 부담스럽다면 검정이나 회색 재킷에 레드 컬러의 이너웨어를 활용하는 방법도 좋다”고 제안했다.
■ 옐로우 광풍
올 봄 여성복은 노란색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노랑은 이상향을 상징하는 색,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대중의 욕구를 반영한다. 특히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태양광을 반영한 채도 높은 선명한 노랑이 유행이다.
캐주얼 브랜드 볼(VOLL)의 김미애 디자인실장은 “지난 시즌에는 미니멀리즘과 모더니즘이 접목돼 블랙과 실버의 단조로운 색상이 유행을 주도했다면 이번 봄에는 그 이전에 유행했던 히피적이고 귀여운 이미지의 원색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과 가까운 노란색, 녹색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과 맞물려 올 봄에는 패션계의 노란색에 대한 애착이 더욱 거세졌다”고 분석했다.
노란색은 밝은 회색과 궁합이 잘 맞는다. 노란색이 너무 어려 보여 꺼려진다면 밝은 회색과 매치해 성숙하면서도 화사한 느낌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연두색 검은색 등도 노란색과 잘 어울린다. 얼굴이 밝은 사람은 어느 노란색이나 잘 어울리지만 얼굴빛이 어둡다면 너무 밝은 컬러는 어색하게 보일 수 있다. 파스텔 계통이나 겨자색에 가까운 색 등 트렌드를 적절하게 응용한 색상을 선택하는 게 좋다.
■ 자연을 닮은 파랑 또는 초록
파랑은 본래 공포와 죽음 등 어둡고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색이지만 패션 아이템에 사용될 때는 신뢰감이나 경쾌감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올 봄 블루는 그 어느 때보다 밝고 긍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도시적인 느낌의 보라빛으로 편향됐던 블루의 패턴은 자연과 가까운 초록빛으로 옮겨가고 있다. 파란색의 유행은 명품 브랜드에서도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입생로랑, ?u렌시아가 등이 블루 컬러의 백을 신상품으로 선보였다.
파랑은 올해 가을겨울 시즌부터는 본격적으로 유행이 확산될 전망이며 내년 봄까지 그 인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시즌엔 일단 파스텔톤으로 가볍게 시작해보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청록색이나 파스텔톤 블루 같은 중간 단계의 파란색을 띠는 하늘하늘한 소재의 아이템 한 가지만 선택해도 패션리더로 등극하는 일이 그리 멀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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