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 7일 태안 앞바다를 죽음의 바다로 만든 기름유출사고가 15일로 100일을 맞는다. 그동안 10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제모습을 찾으며 최근 오염이 심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조업도 재개했다. 하지만 한번 생태계가 무너지면서 해조류가 절반으로 줄고 해양생물들의 오염도 또한 높아 큰 걱정거리로 남아있고, 어민들에 대한 보상도 요원한 실정이다.
“바다에 나오니 살 맛이 나네유. 하릴없이 하늘과 바다만 바라보던 지난 3개월이 얼마나 답답했던지 …”
태안 기름유출사고 100일(15일)을 이틀 앞둔 13일 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포 항구. 몽산포 어민 박성진(40ㆍ남면 몽산리)씨는 태안 앞바다에서 잡아온 주꾸미를 쉴 새 없이 다듬고 있었다. 박씨가 조업을 재개한 것은 지난 7일부터. 기름유출 사고가 난 지 정확히 3달만이다. 최근 국립수산과학원과 식약청이 “안전성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밝힌 이후 안면읍과 근흥, 남, 고남면 등 기름 유출 피해가 적었던 지역 어민들은 시험조업에 들어갔다.
박씨도 12일 오전 6시 1.68톤짜리 소형 연안자망어선을 몰고 포구에서 10여㎞ 떨어진 바다에 깔아놓은 소호(소라껍질을 밧줄에 묶어 주꾸미를 잡는 어구)를 걷어 올렸다. 이날 박씨는 지난해 11월 바다에 깔아놓고 손을 대지 못했던 100타래(1타래 길이 80m)의 소호에서 주꾸미 40㎏을 잡았다. 사고이후 손에 쥔 돈이라고는 정부에서 지급한 생계지원금 217만원이 전부였던 박씨는 조업이후 400여㎏을 잡아 800여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그는 “지난해 배 엔진을 갈고 수리하느라 3,000만원의 빚이 쌓여 눈앞이 깜깜했는데 이제 숨통이 트인다”며 “현재 어획량이 지난해보다 10%정도 줄고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지만 주꾸미를 어망에 담을 때마다 희망을 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갯벌에서 갯가재를 잡는 맨손어업어민 하초록(47ㆍ태안군 태안읍)씨의 얼굴도 활짝 피었다. 갯가재 잡이를 다시 시작한지 이틀째인 하씨는 하루에 600여 마리를 잡아 마리당 200원씩 12만원을 벌었다.
기름이 해안을 덮친 이후 2톤짜리 어선을 포구에 묶어놓았던 문병은(55)씨도 이날 선박기술자를 불러 배를 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문씨는 “이렇게 빨리 조업을 시작할 줄 몰랐다”며 “ 빚을 내서라도 진작에 배를 고쳐 놓을 걸 그랬다”고 말했다.
몽산포어촌계장 문승국(44)씨는 “요즘 잡히는 주꾸미에서 기름냄새가 전혀 나지않고 살도 통통하게 올랐다”며 “4월말부터 시작되는 꽃게잡이도 지금처럼 잡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폐사한 굴 양식장은 재개되기까지 오래 걸릴 전망이다. 양식관련 시설이 모두 기름에 오염돼 있어서 새로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태안군 남면수협이 조업재개 이후 문을 다시 연 몽산포, 마검포, 드르니 등 3개 항포구의 위판장에는 230여척의 등록어선 가운데 하루평균 80여척이 잡아오는 주꾸미 1,5톤을 위판하고 있다.
태안=글ㆍ사진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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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부 조사 결과… 바다 속 더 오염
허베이스피리트호의 원유에 뒤덮였던 생태계의 피해는 예상대로 심각했다. 태안 앞바다의 해조류와 해초류의 개체가 절반 가량 줄었다. 또 지중해담치(홍합류), 쏙 등의 몸 속에서는 오염물질인 PAHs(다환방향족탄화수소)가 기름 오염전보다 최고 5배까지 검출됐다.
환경부가 13일 발표한 <생태계 긴급 실태조사결과> 에 따르면 기름 유출 사고 이후 태안지역 앞바다의 해조(海藻)류는 1㎡당 223.04g으로 지난해 2월 조사때(392.56g) 보다 43.2% 가량이 줄었다. 해초(海草)류인 새우말은 1㎡당 1,053개에서 555개로 47.3%가 감소했다. 생태계>
이 조사는 지난해 12월26일부터 지난 1월31일까지 진행됐다. 해조류는 바위 등에 붙어사는 김이나 미역, 파래 등을, 해초류는 새우말, 거머리말 등 꽃이 피는 바다 식물을 말한다. 해조류와 해초류는 이것을 먹이로 먹는 어류, 조류 등 상위생물의 오염원이 될 수 있다.
태안 앞바다의 저서무척추동물도 기름피해의 직격탄을 맞았다. 학암포의 갑각류는 5종에 1㎡에 56개체가 발견됐는데 이는 지난해 2월(8종ㆍ133개체)보다 대폭 크게 줄어든 것이다. 특히 ‘모래옆새우’는 이 일대를 대표하는 종이었지만 이번 전체 17개 조사 지역중 몽산포 지역에서만 발견됐다.
유류오염으로 인해 동식물의 몸 속에도 독성이 쌓인 것으로 확인됐다. 주로 바위에 붙어 사는 지중해담치의 체내에 오염물질인 PAHs의 농도를 잰 결과 g당 최소 128나노그램(ng)에서 최고 1,058나노그램이 측정됐다. 2003년에 조사된 우리나라 연안의 홍합류 PAHs는 27.5~211나노그램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최고 5배까지 높아진 셈이다. PAHs는 나프탈렌, 안트라센 등으로 화석연료나 유기물이 불완전하게 탈 때 발생하는 것으로, 끓는 점이 높은 석유잔유물도 포함된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청 관계자는 “PAHs 농도는 PAHs에 속하는 16가지 물질의 검출량을 합친 것”이라며 “세부 물질의 검출량을 봐야 하기 때문에 전체 농도가 높다고 해서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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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 보상 문제 어떻게…"턱없이 부족" 법정 공방 예상
원유유출사고의 피해 보상이 끝나려면 아직도 요원하다. 피해액을 놓고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과 주민들 간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보상시기는 1년 이상 늦어질 전망이다.
보상금액 결정권을 가진 IOPC는 최근 집행위원회를 열고 이번 사고의 피해 규모를 3,520억~4,240억원으로 추정, 최대 보상한도인 3,000억원을 지급키로 결정했다.
문제는 3,000억원을 초과하는 피해액에 대한 보상이다. 따라서 주민들은 IOPC의 4,000억원대 피해액 집계가 터무니 없이 적다며 펄쩍 뛰고있다. 아직 본격적인 피해액 신고도 안 했는데 IOPC가 2006년 소득신고서류 등을 참고해 추정한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피해 집계가 모아지면 수 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특별법에 따르면 IOPC가 인정한 피해액을 기준으로 3,000억원을 초과하는 금액은 국가와 자치단체가 주민에게 지급한 뒤 사고 선박인 허베이 스피리트호 측과 삼성중공업에 구상권을 청구한다.
현재 삼성중공업과 허베이 스피리트호 측은 과실 정도를 놓고 법정공방중이다. 만약 삼성중공업의 중과실이 인정되면 무한배상 책임을 지게 되며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보험사, IOPC, 정부 등은 지급한 보상금에 대해 일제히 삼성측에 구상권을 행사하게 된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IOPC에 피해보상을 청구하면 방제비와 인건비 등은 1개월, 주민 피해는 3~6개월의 심사를 거쳐 지급된다”며 “하지만 주민들의 피해액이 IOPC측의 집계와 큰 차이를 보일 경우 중재와 민사소송 등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3,520~4,240억원의 금액은 IOPC가 현재까지 집계한 피해액으로 앞으로 조사를 통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허베이사와 삼성중공업 측이 부담해야 할 금액도 커지게 된다.
태안=전성우 기자 swchun@hk.co.kr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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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가 둘러본 해변
“눈에 보이는 곳은 그런대로 방제가 되었지만 절벽이나 모래 속에는 아직도 기름이 남아있어요.”
13일 태안 해안가를 둘러보던 환경운동연합 김보삼 부장이 만리포해수욕장 외진 곳에서 모래를 파내자 손톱만한 타르덩어리가 나왔다. 한편에서는 모래 속에 스며든 기름이 파도에 쓸려 나가도록 굴삭기가 모래를 뒤집고 있다.
주민들이 체로 걸러 낸다고 하지만 3.5㎞에 이르는 만리포 해변을 처리하려면 언제 끝날지 모른다. 김 부장은“당국은 올해 해수욕장을 개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만 실현될지는 좀더 기다려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리포 관광협회 최용복(50) 사무국장도 “피서객들이 안심하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완전히 정화를 한 후 문을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동조했다.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절벽은 여전히 검은 기름띠가 바위를 감싸고 있다. 소원면 의항2리 속칭 댕갈막. 사고초기 특전사가 로프를 타고 방제작업을 벌였던 이 곳에는 철제 사다리가 놓여있지만 방제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변에서만 전문방제업체가 호스로 물을 뿌려 모랫속 기름을 씻어내고 있고 1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손으로 기름을 닦아내고 있다.
바위의 기름을 닦아내던 농협천안시지부 김상일(32) 계장은“얼마 전 찾아왔을 때는 조금만 더 닦으면 끝나겠구나 생각했는데 해도해도 끝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태안에서 기름이 남아있는 해안은 20.8㎞로 추정된다. 또 기름이 오염된 충남도내 59개 섬 가운데 가의도 등 27곳에도 타르상태로 기름이 많이 남아있다.
태안=허택회 기자 thhe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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