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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필하모닉 내한공연 리뷰/ '비창'의 슬픔 다가갔지만, 혼신 다하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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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필하모닉 내한공연 리뷰/ '비창'의 슬픔 다가갔지만, 혼신 다하진 않은…

입력
2008.03.1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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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악장의 노래하는 듯한 선율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경지라고 치자. 도대체 그 치열한 슬픔의 굴레에서 3악장 승리의 향연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처음 듣는 청중으로 하여금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쳐 잇따르는 처연한 4악장을 뜬금없게 만든 것일까? 그의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 을 본 뒤 생각을 달리했다.

어쩌면 3악장은 베토벤과 같은 환희의 피날레나 의지의 승리가 아닐지 모른다. 1악장을 전곡을 요약하는 슬픈 서곡으로 보면, 2악장은 시골 처녀 타티아나의 오네긴에 대한 풋풋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3악장은 빗나간 사랑에 가슴 저미는 타티아나와 오해로 인한 결투에서 친구를 죽인 오네긴의 가슴이 터질 듯한 절규이다. 그렇게 이해해야만 4악장에서 몸을 가눌 수 없는 슬픔으로 작곡가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비창> 의 권위자로 꼽히는 지휘자 므라빈스키와 카라얀의 좌충우돌 격정이 모두 그렇게 들렸다.

1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런던 필하모닉을 이끈 지휘자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는 생각이 다른 듯했다. 그는 3악장을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과 같이 경쾌한 축제 분위기로 이끌었다. 득달같이 박수가 나오는 것도 당연했고, 마치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그는 거의 쉬지 않고 4악장으로 바로 들어갔다. 4악장의 슬픔을 뒷받쳐야 하는 앞선 세 개 악장이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유로프스키는 기왕지사 새로 시작했다. 그의 4악장은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 과 같이 치열했다. 다행히 곡이 끝났을 때는 우려가 걷히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차이코프스키의 마음에 다가간 것이다.

이 곡에서 오케스트라는 극한의 상황에 처한다. 연주자는 기교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작곡가와 같은 심리적 공황 상태로 치달아야 한다. 런던 필하모닉은 빼어난 유기체로 극단적인 셈여림을 오가며 선율을 엮었다. 그러나 왠지 이들은 감정을 이입하기보다는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세계적인 악단의 내한공연에서 혼신을 다한 연주를 듣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1부에서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 3번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언제나처럼 몰입가경을 달렸다. 런던 필하모닉은 톱니바퀴 같은 짜임으로 기계적인 작품 구조를 받쳤다. 협연 무대가 갖는 특성상 상승효과가 작용했고 피날레에서 모두가 만족했다. 스타일리스트인 유로프스키의 모션은 악단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정준호(FM실황음악회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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