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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의 '심양장계' 번역서 출간… 조선·청·일 외교 등 '현장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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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의 '심양장계' 번역서 출간… 조선·청·일 외교 등 '현장 리포트'

입력
2008.03.1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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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오랑캐의 나라 황제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 이마를 땅에 세번 부딪히기를 세번 하는 항복의 예)를 하는 조선외교사상 최대의 치욕을 당한 병자호란(1636) 이듬해 청은 소현세자, 봉림대군과 3정승 6판서의 자제를 수도인 심양으로 압송해갔다.

당시 세자를 수행했던 신하들이 세자의 볼모기간 동안 본국으로 보낸 보고서인 ‘심양장계(瀋陽狀啓)’가 <심양장계- 심양에서 온 편지> (창비 발행ㆍ사진)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1999~2000년 <국역 심양장계> (전 3권)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국역한 적이 있는데, 이번 국역본은 이강로 단국대 명예교수가 감수하고 정하영 교수 등 이화여대 국문과 출신 고전연구자 6명이 함께 옮긴 것이다

장계는 세자를 수행한 시강원(조선시대 왕세자 교육을 담당한 관청)의 관리가 세자의 재가를 거쳐 본국의 승정원(비서실)에 보낸 것들로 인조 15년(1637)부터 인조 21년(1643)까지 7년 간의 기록이 묶여있다. 소현세자가 청에 머무르던 마지막 해인 인조 22년(1644)의 기록은 명청 교체기의 미묘한 국제정세 때문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본은 모두 10권 10책으로 볼모기간 중 세자와 관료들의 일상생활, 포로가 된 조선인의 상태, 청나라에 항복한 조선인 역관의 태도, 조선외교활동의 태도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있다. 특히 패전국 볼모의 처지로 조선의 세자와 관료들이 감내해야 했던 안타까운 모습이 절절하게 기록돼 있다.

모진 고문과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회유가 이어졌지만 “죽음을 참고 이곳에 온 것은 살아 돌아가 다시 우리 임금과 노모를 보고자 함인데, 만일 이러할진대 살아도 죽는 것만 못하다”며 끝까지 절개를 지킨 삼학사 최후의 모습, 청에 압송돼 심문을 받은 최명길과 김상헌이 풀려나면서 황제가 있는 서쪽을 향해 사배(四拜)의 예를 올리라는 요구를 받자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각각 이를 수용하고 거부하는 모습 등이 그렇다.

장계에는 이밖에도 청나라 건국 초기의 정치적 상황과 궁실의 내부사정, 조선에 귀화한 중국인의 속환과 심양과 의주에서의 교육문제 등 조선과 청사이의 사적교류, 병자호란 전후에 이뤄진 조선과 일본의 교섭관계를 비롯한 조선ㆍ청ㆍ일의 외교관계 등이 기록돼 있어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역주자인 김경미(48)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연구원은 “기존 번역본이 학술적 성격이 강한 반면 이번 번역은 풀어서 번역을 하고 에피소드별로 소제목을 다는 등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며 “당시 심양에 잡혀간 사람들의 관심사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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