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였다. 맹렬히 번지는 신용경색의 불길을 잡기 위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다시 한번 시장의 ‘허를 찌르는’ 묘수를 던졌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는 전날 뉴욕증시의 급등 영향으로 12일 오전 한때 폭등세를 보였으나 오후 들어 상승 폭을 상당부분 반납했다. 안정세를 찾는가 싶었던 원ㆍ달러 환율도 1.3원 오른 달러당 971.3원으로 마감, 이내 최근의 상승 흐름으로 돌아섰다. 지구촌의 중병을 고칠 치료방법은 갈수록 선택의 여지가 줄어드는 형국이다.
■ FRB 조치, 내용은
FRB는 11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 채권 경매를 통해 2,000억달러(약 194조원)를 단기 자금 시장에 긴급 투입키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 채권 공식 딜러들인 대형 은행, 증권사의 ‘프라이머리 딜러’(PM)들이 갖고 있는 부실해진 모기지증권(MBS)을 담보로 맡기면 FRB가 갖고 있는 국채로 교환해 준다는 것. 통상 1,2일이던 만기도 한시적으로 28일로 늘려줬다.
이는 다시 말해 위험성이 높아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는 MBS를 FRB가 위험을 일부 분담하며 1달 동안 안전하고 환금성 좋은 국채로 바꿔준다는 얘기. 국채를 팔아 마련한 현금으로 마진콜(계약이행을 보증하기 위해 예치해 놓은 증거금이 부족해졌다며 이를 더 쌓으라고 요구하는 것) 등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금융회사나 헤지펀드를 구하라는 뜻이다.
미국 시장은 당장 환호했다. 뉴욕증시는 다우지수가 5년 만에 최고 상승률인 3.55%나 급등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FRB가 내놓은 대책 중 ‘가장 현명한(smartest)’ 조치”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12일 아시아 시장의 반응은 무덤덤에 가까울 정도다. 장중 한때 40포인트 가까이 올랐던 종합주가지수(코스피)는 결국 17포인트 상승에 그쳤고 2~4% 올랐던 일본, 대만, 홍콩 증시도 1%대 상승으로 식어버렸다.
■ 여전한 불안감
이유는 이번에도 ‘모르핀’처럼 잠시 고통을 잊게하는 처방일뿐, 근본적인 치유책은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다. 굿모닝신한증권 김중현 연구원은 “그동안 숱한 충격요법에도 효과가 며칠 가지 못했던 학습효과 때문에 오늘도 투자심리가 이내 관망세로 돌아선 결과”라고 분석했다.
FRB의 이번 조치가 분명 이전보다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다. 예전 유동성 공급은 안전자산(국채)을 담보로 맡기면 현금을 빌려주는 식이었지만 이제는 위험자산(MBS)까지 담보로 받아들이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로는 시장 상황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함과 동시에 자칫 우량 모기지 채권까지 거래가 막히면 시장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번 역시 문제의 근원인 부실자산을 매입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데 한계가 있다. 투자심리가 관망세로 돌아선 것도 ‘불씨’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금융회사들의 서브프라임 관련 위험 노출을 장기화할 수 있다는 지적은 물론, FRB마저 잠재 부실덩어리를 떠안아 위험이 더욱 커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 FRB, 깊어지는 고민
FRB는 지난해 신용위기 이후, 9월부터 다섯 차례나 금리를 내렸다. 올 1월엔 긴급회의를 열어 0.75%포인트에 달하는 깜짝 인하도 해봤지만 ‘금리 효과’는 금세 사라졌다.
다른 방법도 썼다. 지난해 8월 지급준비율 인하, 12월 긴급유동성 공급에 이어 올 들어서는 재무부 주도의 슈퍼펀드 조성 계획, 아부다비 투자청 등 아시아 국부펀드들의 월가 투자은행 지분 매입 등이 잇따랐지만 이내 돈 흐름은 얼어붙었고, 모기지 금리는 다시 튕겨져 올랐다.
다행히 이번 조치로 시장의 파격적인 금리인하(0.75%포인트) 요구는 다소 줄었다. 선물시장은 이미 0.75%포인트 인하 가능성을 86%에서 60%까지 낮췄다. 성장을 위해 물가를 포기해야 하는 FRB의 고민은 줄었지만 더 큰 문제는 꺼내들 카드가 점점 없어진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전세계 투자자들이 ‘고통스레’ FRB를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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