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l hooks. 미국 흑인(보다 정확하게는 Afro-American이 옳다) 여성 페미니스트의 필명(筆名)이다. 1952년 생으로 본명은 글로리아 왓킨스이다. 벨 훅스라는 필명을 갖게 된 연유가 흥미롭다. 어린 시절 대장 노릇을 도맡아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말썽을 부리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께서 왈가닥 손녀딸을 다스리느라 집 뒤켠 움막에 커다란 대못을 박아 그곳에 매달아 두셨다고 한다. “여자 아이가 그렇게 거칠면 못 쓴다”고 훈시하시면서.
■ 페미니즘 연구 기여한 흑인여성
대못에 동동 매달려 있는 동안 어린 흑인 소녀는 잠자리에서 할머니가 들려 주시던 옛날 이야기를 떠올리곤 했단다. ‘옛날 옛날에 가난한 흑인 소녀가 살았는데 밤이나 낮이나 착한 마음으로 착한 일을 부지런히 했더니 하나님께서 커다란 방울을 선물로 내려주셨대. 그 커다란 방울을 목에 달고 보니 몸이 하늘로 훨훨 올라가게 되어, 착한 흑인 소녀는 하늘나라로 갔단다.’
커다란 대못에 매달려 있던(hooks) 어린 시절의 반항적 모습과, 착하게 살면 하늘을 날 수 있는 방울(bell)을 선물로 받게 되리라는 허구를 진실로 믿었던 어리석음을 기억하기 위해 그는 bell hooks라는 필명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름을 굳이 소문자로 쓰는 건 제대로 된 이름 한 번 가져본 적 없이 사라져간 흑인 조상들을 잊지 않기 위한 고집이 담겨 있다 한다.
벨 훅스가 명성을 얻게 된 첫 저작은 1984년 출판된 <페미니즘 이론:주변으로부터 중심을 향해> 다. 이중・삼중의 억압과 참혹한 고통을 받아온 유색인종 여성들의 목소리가 통합되지 않는다면, 백인 중산층 여성의 경험에 터한 페미니즘 이론은 완성될 수 없다는 입장을 담은 책이다. 페미니즘>
성ㆍ계급ㆍ인종ㆍ종교 그 어떤 이유로든 사회적 배제를 경험해온 집단들이 중심으로 진입하게 될 때, 주변과 중심 간의 불평등 및 부정의 또한 사라질 수 있음을 함의한 책이기도 하다. 여성집단 내부에도 억압과 차별의 뿌리와 양상이 다중적(多重的)으로 존재함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 역작에 학계가 주목하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예전 O. J. 심슨 사건을 두고 백인여성들은 이를 가족폭력으로 규정하여 심슨을 맹비난했던 반면, 흑인여성들은 인종차별이라 하여 심슨을 두둔했던 선례가 생각난다. 덕분에 한창 달아오른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흑인 여성들이 오바마를 지지할지 힐러리를 지지할지 귀추가 주목되기도 한다.
이제 점차 분명해지고 있는 건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뿌리 및 요소가 한층 다양해지고 있다는 사실일 게다. 더불어 여성과 흑인이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당당히 나설 수 있기까지는 ‘주변’집단을 ‘중심’으로 포섭하기 위한 사회적 인정과 개인적 포용력이 부단히 축적되어온 과정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일 게다.
■ 한국사회도 ‘주변집단’ 돌봐야
이제 한국사회에도 ‘주변’집단의 다양성이 점차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제3세계 출신 이주노동자를 만나는 일이 빈번해졌고, 교정에서 터번 두르고 사리를 걸친 유학생들과 마주치는 일도 흔해졌다. 결혼이민자 가족이 증가하면서 그들 자녀 세대의 중학교 진학이 시작되었고, 1990년대 중반 이후 급증해온 북한이탈주민 또한 새로운 소수집단으로 부상했다. 여기에 더하여 동성애 및 트랜스젠더 그룹도 자신들의 권리 찾기를 시작했다.
진정 우려되는 바는 시장이 국가에 견주어볼 때 이들 ‘주변’집단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시장은 불평등을 선호한다’는 뼈아픈 현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요, 주변이 중심으로 통합되기 위해서는 정책적 차원의 배려와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수 요건임을 필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무늬만의 선진국이 아니라 선진국다운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넘어야 할 장벽과 해결해야 할 과제가 어찌 만만하다 할 것인가.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