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공항을 빠져 나와 아산로를 타고 20여분 만에 도착한 울산 동구 방어동 현대중공업 해양사업조선소 부지. 울산항이 마주 보이는 96만㎡(29만평)의 넓은 조선소 부지로 들어서니 '골리앗'처럼 우뚝 솟은 크레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세계 최대(1,600톤급) 규모의 크레인 '말뫼의 눈물'이다.
현대중공업이 2002년 조선강국 스웨덴 말뫼의 조선업체 코컴스로부터 해체와 운송비 부담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들여왔다. 스웨덴 언론이 조선산업의 상징을 떠나 보내는 아쉬움을 '말뫼의 눈물'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45층 빌딩 높이의 크레인 아래로는 수십 대의 트랜스포터(선체블록을 지고 나르는 중장비)가 분주히 움직이며 선박 제조작업이 한창이다.
건조 현장 옆에서는 10여대의 굴착기가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쉴새 없이 땅파기 작업을 하고, 파낸 모래는 이내 덤프트럭에 실려 나간다. 바로 현대중공업이 10번째로 건설 중인 H도크(Dock) 현장이다.
도크 부지만 5만6,350㎡(1만7,000평), 길이와 폭이 각각 490m와 115m로, 100만톤급(적재용량 기준) 선박을 제조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H도크는 고부가가치 선박인 '부유식 원유 생산ㆍ저장설비'(FPSO)' 전용 도크로 활용될 계획이다. 10월 준공 예정인 H도크의 현재 공정률은 25%선.
1996년 초 9번째 도크 건설 이후 대규모 시설 투자가 없었던 현대중공업이 12년 만에 증설 투자에 나선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지어질 선박은 최근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의 자회사인 EPNL이 발주한 16억달러 짜리 FPSO. 창사 이후 최고 수주액을 기록한 첨단 선박을 세계 최대 규모의 도크에서 건조한다는 점에서 회사도 남다른 의미를 두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할 FPSO는 심해의 원유를 뽑아 올려 저장했다가 유조선에 실어주는 이른바 '해상 정유공장'이다. 1,000m 이상의 깊은 바다에서도 작업이 가능한데다, 기존 유정(油井)이 고갈되면 자리를 옮겨 다시 원유를 생산할 수 있어 기존 고정식 원유저장설비에 비해 경쟁력이 뛰어나다.
고유가의 지속으로 심해의 원유 생산도 채산성이 생김에 따라 FPSO 건조 요청이 늘어나는 추세다. 1척 당 가격은 15억∼20억달러(약 1조4,000억∼1조9,000억원) 수준. 1척에 2억달러 안팎인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나 천연가스운반선(LNG)에 비해 최대 10배 가량 비싼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세계 조선업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한 '무기'로 FPSO 시장 선점 전략을 택한 현대중공업이 FPSO 전용 대형 도크 건설에 나선 것이다.
H도크가 건립되면 일반 상선용 도크보다 조업 기간이 짧아져 수주 경쟁력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해양사업본부 노항래 부장은 "전용 도크에서 조업할 경우 도크 내 작업기간을 5.5개월에서 4.5개월으로 1개월 가량 단축할 수 있다"며 "이 정도면 원가도 15~20% 가량 절감할 수 있어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도크 건설 작업이 속도를 더하면서 공기도 당초 예정보다 크게 앞당겨질 전망이다. 일반 도크 건설에 통상 1년6개월이 소요되지만, 지난해 11월 착공된 H도크는 11개월 만인 10월께 완공된다.
노 부장은 "100만톤급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크를 1년도 안 걸려 완공하는 자체가 세계 조선사에 유례없는 일"이라며 "H도크는 우리나라가 세계 조선업계 최강국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울산=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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