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는 12일 종로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10분 앞둔 오전 8시50분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에 전화를 걸었다. 손 대표는 “미안하다. 양해하신다면 종로에 출마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양해를 구한다”는 손 대표의 말은 종로 출마를 염두에 두고 전날(11일) 종로구 창신동에 전셋집까지 알아보고 있던 정 전 장관에 대한 배려였지만 사실상 통보였다.
순간 정 전 장관은 “손 대표가 선수를 쳤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부터 서울 출마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회동을 제의했지만 손 대표가 차일피일 미루다가 느닷없이 종로 출마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표가 출마하겠다는 데, 더욱이 승산이 높지 않은 종로에서 승부를 하겠다는 데…정 전 장관은 “큰 결단을 내리셨다”고 화답했다. 종로 뿐만 아니라 내심 동작을도 저울질하던 정 전 장관으로서는 손 대표가 고민을 덜어준 측면도 있다. 손 대표는 “내가 북부벨트를 맡을 테니 동작을에 출마, 정 후보가 남부벨트를 맡아주면 서울에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지 않느냐”고 요청했고 정 전 장관은 “그러겠다”고 흔쾌히 답했다. 손 대표와 정 전 장관의 역할분담, 투톱 체제가 발진하는 순간이었다.
두 ‘간판 타자’의 서울 동시 출마는 기본적으로는 ‘윈윈의 협력’으로 평가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한 견제관계도 내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손 대표는 상징성이 높은 종로 출마로 정치적 명분을 선점했고 정 전 장관은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은 동작을에 출마하는 실리를 거둔 측면이 있다. 더욱이 정 전 장관으로서는 대선 참패 이후 한때 제기됐던 자숙론을 잠재우고 3개월 만에 당의 간판으로 다시 나서게 된 것은 반전이자 소득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흐름은 일단 손 대표에 가 있다. 지난 대선과 비교하면 주연과 조연이 맞바꾼 셈이다. 대선국면에서는 정 전 장관이 민주개혁진영으로 이적한 손 대표를 결과적으로 경선의 ‘불쏘시개’로 활용했지만 지금의 총선 국면에서는 손 대표가 정 전 장관을 ‘도우미’로 활용하는 구도다.
손 대표는 한나라당 탈당이라는 멍에를 민주세력 재기를 위한 ‘서울 심장부 투신’으로 털어내고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을 통한 ‘차도살인’(借刀殺人ㆍ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의미) 공천도 더욱 힘을 받게 됐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득실과 위상은 결국 총선 결과에 따라 판가름 날 수밖에 없다. 당선되는 사람이 대세를 쥐게 될 것이며 두 사람 모두 살아난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국면에서 새로운 ‘협력과 견제’를 하는 관계가 될 것이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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