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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이용대의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22> 과감히 성역깨고 도전한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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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이용대의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22> 과감히 성역깨고 도전한 여성들

입력
2008.03.1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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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만 해도 산에 다니는 여성들은 흔치 않았으며, 등산은 남성 중심의 성역처럼 여겨졌다. 더구나 여자들의 암ㆍ빙벽 등반은 금단의 영역이었으며, 이런 짓을 하는 여자는 별스러운 짓거리를 하는 사람으로 여기던 시절이라 여자에겐 기회가 없던 시대였다. 어느 해인가는 애인을 동반하고 온 후배를 보고 “임마! 암벽이 연애하는 장소야”라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노려보며 호통을 치던 완고한 선배들도 있었다.

이런 일은 우리보다 선진이라는 일본에서도 그랬다. 1975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여성 등정자 다베이 준코를 탄생시킨 일본사회에서도 여성만으로 조직된 에베레스트원정대를 여성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스폰서들이 냉대했다. 일본의 스폰서들이 여성들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탓이다.

다베이 준코는 등정이 불가능하다고 재정지원을 꺼린 사람들조차 격려금을 보내오고 정상등정을 대서특필하는 언론보도에 대해, “왜 남자들은 에베레스트에 대해 난리를 피우는지 모르겠다. 단지 산일뿐인데…”라고 자신을 냉대해온 남성들에게 일침을 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남녀 성별의 구분 없이 대등한 위치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 격세감이 느껴진다. 요즘은 보통의 남성들보다 더 우위에 서서 활동하는 여성들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산 귀신에 씌우면 남녀의 구분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세상에는 평범한 삶을 사는 보통의 여성들이 더 많지만 굴곡진 모험의 삶을 사는 여자들도 있다. 이런 부류의 여성들은 산을 통해서만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1995년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와 K2를 무산소 단독등정에 성공하고 K2 하산과정에서 시속 100Km의 강풍에 날려 실종된 영국의 앨리슨 하그리브스는 두 아이가 딸린 주부이지만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온몸을 산에 던진 사람이다. 그녀는 단조롭고 틀에 박힌 일상에 대한 반항으로 산과 모험을 삶의 방편으로 택한다.

하그리브스는 옥스퍼드대학조차 등산과 대학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서 진학을 포기한 채 등산에 모든 열정을 불태우며 알프스 6대 북벽을 올랐고, 사내들도 감히 넘보지 못하는 마터호른 북벽 동계 단독등반과 동계 그랑드조라스 북벽을 악천후 속에서 단독 등정한다. 특히 1988년에는 출산이 등반을 방해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임신 6개월의 몸으로 험악한 아이거 북벽을 올라 언론으로부터 야망과 명성 때문에 임신 중에 과격한 등반을 했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미국의 린 힐은 남성들이 시도조차 못해본 자유등반의 영역에 도전하여 깔끔하게 등반을 마무리한 암벽등반가다. 그녀는 1,000m의 화강암 수직벽 엘캐피탄의 노즈 루트를 인공장비를 쓰지 않은 채 23시간 만에 자유등반으로 돌파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우리도 그 동안 하그리브스나 린 힐에 버금갈 정도의 여성 산꾼들이 해외 고봉에 진출하여 종횡무진으로 활동해왔다. 한국이 자랑하는 여성 고산등반가 지현옥. 그녀는 매킨리, 안나푸르나(2회), 캉첸중가, 무즈타그아타, 로브제, 임자체, 에베레스트, 가셔브룸 1-2봉 등 10개의 고산에 도전해 캉첸중가만 실패하고 모두를 올랐다. 그 중 4개는 8,000m급 거봉이며, 가셔브룸 2봉은 무산소 단독등정이라는 쾌거를 이룩했으나 두 번째 오른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다. 그녀는 폴란드의 반다루트키에비치와 프랑스의 상탈모디어에 이어 여성으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8,000m고봉 을 많이 오른 기록을 남겼다.

지금 지현옥에 뒤이어 고미영과 오은선 두 맹렬 여성 산꾼들의 행보가 7대륙 최고봉과 8,000m 14봉이라는 목표를 향해 당당하게 행진하고 있다. 오은선은 아시아 여성 3번째로 7대륙 최고봉을 완등 했고, 가셔브룸2, 에베레스트, 시샤팡마, 초오유, K2 등 8,000m 5개봉을 등정했다. 고미영은 에베레스트, 초오유, 시샤팡마, 브로드피크 등 8,000m 4개봉을 오르며 두 사람이 14거봉 완등 경주를 벌이고 있다.

고미영은 필자와 두 차례나 해외원정을 한 바 있으며 코오롱등산학교에서 암벽등반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에게서 배울 점은 타고난 낙천성과 왕성한 식욕, 그리고 자기관리에 충실하다는 점과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감싸준다는 점이다. 해외원정 중 어느 나라의 현지 음식도 먹어치우는 다국적의 위가 부럽다. 게걸스레 먹고 사내처럼 힘을 쓰는 그가 부러울 뿐이다. 고소 환경에서 식욕감퇴로 음식물 섭취를 소홀이하여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 대원들은 그녀의 푸짐한 식욕을 부러워한다. “왕성한 식욕은 고산등반의 에너지원”이라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고 보면 세수 대야가 밥그릇으로 쓰이는 것에 놀랄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고산등반가들에게 부족한 점이라면 기술등반능력을 들 수 있지만 그녀는 스포츠 클라이밍 세계 랭킹 5위라는 탁월한 기량의 보유자다.

꿈과 목표가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 어떤 길이든 스스로가 선택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는 사람만이 자기의 세계를 열 수 있다. 고미영과 오은선 두 여성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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