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시 충렬사(忠烈祠ㆍ사적 236호)에서 스님을 만나는 게 즐거움이었다. 그는 입담이 좋았다. "아, 일제시대 말기였지. 하루는 새벽 도량(道場)을 도는데 전날 밤에도 있었던 칼이 없어진 거야.
보관함 유리가 깨진 데서부터 바닥에 끌린 흔적이 있었어. 동네 사람들을 깨워 추적하니 그 자국이 요 아래 백사장까지 연결돼 있었는데, 왜놈 여럿이 그 칼을 나룻배에 싣느라고 낑낑대고 있더군. 그대로 뺏어와서 이렇게 보관하고 있지." 1960년대 초반 어릴 적 추억이다. 일본인 여럿이 밤새 1㎞ 밖에 끌고 가지 못했다는 칼, 충무공의 장검(長劍)이다.
■그 장검은 임진왜란 발발 2년 후인 1594년 4월 한산도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비슷한 크기로 2개가 제작됐는데, 좀 더 큰 것이 그것이다. 길이 197㎝, 무게 4.32㎏(칼집 포함 5.30㎏)으로 당시 일본식과 중국식의 장점을 모은 '퓨전 스타일'이다. 칼날 길이만 130㎝가 넘어 기골이 장대하고 팔이 길었다는 충무공도 단번에 뽑아 휘두르기가 쉽지 않았다.
보좌관이 옆에서 칼집을 잡아 줬다니 전투용은 아니다. 충무공이 애용한 50~70㎝ 짜리 실전용 칼이 여럿 남아 있다. '너무 무거워 못 훔쳐갔다'는 그 장검은 나중에 충남 아산 현충사로 옮겨졌다.
■서울시가 세종로 광화문광장을 만들면서 충무공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을 어찌할까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세종로엔 세종대왕"을 주장하는 쪽에서 새삼 충무공 동상이 '엉터리'라는 속설에 귀를 기울이는 모양이다.
표정과 용모가 너무 무섭다, 쥐고 있는 칼이 조선식이 아니다 등은 그렇다 치는데, 칼집에 든 칼을 오른손에 잡고 있으니(왼손으로 뽑아 사용?) 왼손잡이냐는 반박이 '엉터리'의 핵심으로 회자되는 것은 곤란하다. <난중일기> 필체나 영정으로 미루어 분명히 오른손잡이였고, 그러기에 지휘ㆍ의전용 장검을 오른손에 든 것은 당연했다. 난중일기>
■충무공 동상이 굳이 '엉터리'가 아니므로 지금 자리에 그대로 두자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사견으로는 세종로 광장의 상징적 동상은 세종대왕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 충무공 동상이 높이 17m로 서 있는데 그 바로 뒤(세종문화회관 앞)에 6.7m 높이의 세종대왕 좌상을 놓는 서울시 안이 어색하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충무공을 충무로로 보내는 것은 너무 섭섭(?)하다. 그래서 얘기인데, 세종대왕 동상을 지금 충무공 동상 자리에 놓고, 충무공 동상은 남산 꼭대기나 광화문 앞 남동쪽, 좀더 나아가 시민 열린마당으로 모시면 어떨까.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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