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렸던 지난 2006년 3월. 대표팀에 합류한 이승엽(32ㆍ요미우리)은 당시만 해도 소속팀에서 입지가 불확실했지만 태극마크를 자청해서 달았다. 그리고 이승엽은 홈런왕(5개)과 타점왕(11개)에 오르며 한국의 ‘4강 신화’를 썼다.
꼭 2년이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1차 예선 때 왼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불참했던 이승엽은 2차 예선 참가를 결심한 뒤 “자신이 없다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술 후유증과 용병 거포 라미레스의 영입으로 4번 타자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역시 당시와 비슷했지만 이승엽의 천재적인 거포 기질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사실상 대표팀에 본선 티켓을 선물한 이승엽은 8개국이 4경기씩 치른 11일 현재 홈런 공동 1위(2개), 타점 1위(9개), 타율 2위(0.583) 등 타격 주요 부문을 휩쓸고 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112명의 선수 가운데 단연 으뜸이고, 4승으로 단독 1위를 질주 중인 대표팀 내에서도 군계일학이다. 대회 규정상 최우수선수(MVP) 선정이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홈런은 대만의 로쿼휘와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는데, 로쿼휘는 14타수에서 2개를 친 반면 이승엽은 12타석에서 2개를 때렸다. 2개 모두 풀스윙으로 우중간 스탠드 상단에 꽂아 최상의 컨디션에서 나온 홈런임을 입증했다. 타율은 5할8푼3리(12타수 7안타)로 캐나다의 반 오스트랜드(0.615)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 8일 호주전에서 손목만 이용해 만든 2루타에서 보듯 파워 뿐 아니라 테크닉에서도 절정에 올라 있다. 타점은 9개로 로쿼휘(7개)에 2개 앞서 있다. 겉으로 보이는 성적표가 이승엽의 활약을 가늠하는 단순 지표가 아니다. 1차전인 남아공전에서는 선제 결승타를 때렸고, 호주전에서는 쐐기 3점포 포함, 3타수 3안타 4타점을 휘둘렀다. 멕시코전에서도 선제 쐐기 적시타 등 3타수 2안타 2타점을 올렸고, 10일 스페인전에서의 대타 홈런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활약상의 결정판이었다.
현지에 기자를 파견해 이승엽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하고 있는 스포츠호치는 11일 ‘과연 이승엽다운 집중력’이라고 극찬하면서 “초반에는 1루 코치를 맡아 느슨한 분위기였지만 딱 한번 찾아온 기회에서 달콤한 직구를 놓치지 않고 휘둘러 넘겼다”고 전했다. 일본대표팀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한국대표팀과 이승엽 시찰을 위해 이날 대만에 입국했다.
타이중(대만)=성환희 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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