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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과객(過客)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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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과객(過客)장관

입력
2008.03.1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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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객(過客). 공무원들은 장관을 '지나가는 나그네'로 생각한다. 학자나 기업인 같은 비(非)관료 출신 장관일수록 더욱 '과객시(視)'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 취임한 장관은 의욕이 넘친다. 민간출신 장관들은 더 그렇다. 새로운 시각, 새로운 접근을 강조한다. "차제에 관료사회를 확 뜯어고쳐 보겠다"는 '전의'까지 불태운다. 그래서 조직을 흔들고, 인사를 파괴하며, 기존 행정관행을 뜯어고치려 한다.

공무원들은 이런 변화가 불편하다. 장관 지시라 노골적으로 거부할 수는 없지만, 결코 능동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관가풍토에서 장관수명은 평균 1년 내외. 공무원들은 납작 엎드리면서 이렇게 뇌까린다. "조금만 참자. 어차피 떠날 과객인데!"

민간출신 장관들은 퇴임 후 한결같이 공무원들의 이런 비협조를 지적한다. 기존 관행이나 이해관계에 반하는 명령을 하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신중해달라" "재고해달라"는 답변만 온단다. 그래도 밀어붙이려고 하면 그 다음부터는 정보로부터 차단, 보고 누락, 외부인사 면담이나 일정조정 등 '조직적 방해'시도가 뒤따른다.

선택은 두 가지다. 관료조직과 타협(혹은 굴복)할 것인가, 끝까지 밀어붙일 것인가. 각각엔 기회비용과 이익이 있다. 타협시 개혁은 포기해야 하지만, 대과 없는 평균 수준의 일처리는 가능해 장관직 수명은 길어질 수 있다.

반면 관료조직과 싸워 이길 경우 '개혁장관'의 반열에는 오르겠지만 그럴 확률은 높지 않다. 오히려 '삐걱거리는 장관'으로 찍혀 조기낙마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대부분은 고집을 꺾고 타협의 길을 택한다. 장관들은 결국 깨닫는다. "난 과객일 뿐이다!"

민간출신의 한 전직장관은 이런 문제에 대한 유일한 현실적 해결책으로 '팀이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관 혼자 들어가 관료조직에 포위된 상태에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관료조직의 두터운 저항벽을 뚫고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 내려면 장관 뿐 아니라, 팀이 들어가 차관 1급 및 핵심 국장까지도 장악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명박정부 초대 경제팀에는 민간출신 장관들이 유난히 많다.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장관,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 전광우 금융위원장까지. 비관료 태생의 장관들이 이렇게까지 대거 포진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해당부처에서 홀홀단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이야 정권 초라 대통령이 직접 챙기니까 관료조직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고 국정운영이 일상화되면 결국 역대 수많은 '과객장관'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크레인이 없어서 규제전봇대를 방치했던 것은 아니다. 제대로 규제완화를 하려면 공단의 전봇대 보다, 관료사회에 수십년 뿌리내려 있는 전봇대부터 뽑아야 한다. 토ㆍ일요일에 출근하고 아침회의를 한시간 앞당긴다고 저절로 풀릴 문제는 아니다.

장관 한 사람으론 전봇대를 못 뽑는다. 수뇌부가 바뀌어야 한다. 민간 출신도 좋고, 아예 타 부처 출신을 영입해도 좋다. 기존 조직에선 '점령군'소리가 나오겠지만, '낙하산(정부→민간)'은 되고 '역(逆)낙하산(민간→정부)'은 안될 이유는 없지 않는가.

경제산업부 이성철 차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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