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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새 정부의 불운과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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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새 정부의 불운과 행운

입력
2008.03.1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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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기발한 발상으로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쓰지 않는 한,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5%를 넘기 힘들 것이다. 미국 발 경기침체와 신용위기가 더욱 확산되면서 한국 경제의 실물과 금융부문을 옥죄고, 원유 광물 곡물 등 원자재값 급등이 촉발한 물가불안은 민생은 물론 산업현장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대외의존도가 70%를 넘는 우리로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불길한 변수들을 감당하기에 벅찬 상황이다.

새 정부와 코드를 맞추려고 애쓰던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성장률 전망치를 5%에서 4.7%로 낮춘 것부터가 심상찮다. 다른 민관 경제연구소들도 곧 4%대 중반으로 전망을 하향조정할 움직임이다. JP모건과 메릴린치 등 세계 8대 투자은행의 분석은 5.5%에서 3.9%까지 천차만별이지만, 평균은 4.7%에 그쳤다.

더구나 경기침체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던 부시 미국대통령이 '고용쇼크' 지표가 나온 지난 주말 마침내 고개를 떨궜고, '배럴 당 유가 200달러 시대'라는 끔찍한 예상도 나온다. 낮춰 잡은 성장률 전망도 낙관적이라는 얘기다.

■ 경기침체ㆍ고유가 압박 심화

문제는 이런 성장률로는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고, 성장의 혜택이 서민과 중산층에 고루 돌아가는 발전체제도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이다.

경제 살리기 내각의 실질적 사령탑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엊그제 "지난 10년간 우리 경제가 4%대의 성장률에 머물면서 역동성을 잃어버렸다"며 "이런 추세라면 5~10년 내에 세계 경제의 변방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일전에 이 대통령이 지적한 것처럼, 4%대로 위축된 성장의 과실마저도 중소기업 자영업자 소상공인 서민층 등에게는 거의 돌아가지 않았다.

이 같은 부정적 유산에 편승해 집권한 새 정부는 '국부의 원천이자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이로부터 성장의 양과 질을 획기적으로 제고하는 동력을 끌어내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해왔다.

'규제개혁과 감세로 기업의 투자의욕을 일깨우면 생산 고용 소득 소비 수출 연구개발 등 경제의 선순환 체계가 뒤따라온다'는 논리는 어제 '7% 성장능력을 갖춘 경제'로 표현됐다. 전문가 관점에서 보면 어설픈 구석이 많지만, 단순명료한 화법의 설득력은 작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대내외 상황은 이 순환사이클의 작동을 가로막고 있고,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층의 삶은 치솟는 물가 때문에 더 고단해졌다. 단기적으로 경기나 민생이 회복하기는커녕 뒷걸음칠 우려가 더욱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 국민들은 새 정부에 대한 믿음을 쉽사리 버리지 못한다. 정권 초기에 벌써 지지도가 50% 안팎으로 떨어졌다고 하나, 기대와 독려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실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의 과잉의욕이 빚은 정책혼선, 내각 및 청와대 비서진 인선과정에서 드러난 민심불감증 등을 보면 새 정부가 내세운 '화합적 자유주의와 창조적 실용주의'는 그들만의 코드정치를 숨기기 위한 장식품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장ㆍ차관들이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며 격식과 형식을 배제한다고 가려질 일이 아니다. 이런 사정을 정확하게 꿰뚫는 국민들은 지금 이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한다. 대선 때 혹은 당선 이후 보낸 지지와 성원이 배반 당하는 일을 또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다.

■ 인사ㆍ정책 쇄신 계기삼아야

혹자는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나 고유가 등의 악재가 새 정부의 불운이자 짐이라고 말하지만, 꼭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니다. 불가항력적 환경을 극복해가면서 성장의 양과 질을 되돌아볼 시간을 벌고, 경제의 리스크 관리능력을 키우는 좋은 기회도 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부가 위기대처 과정을 통해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와 신뢰를 얻고 주요 경제주체의 균형된 이해를 반영하는 틀을 짜는 것이다. 그 전제는 당연히 집권세력과 정책담당자의 자기쇄신과 절제다.

이 대통령은 어제 공직자의 '머슴 리더십'을 재차 강조했다. 그런데 그 머슴들이 아직 자리와 일을 못 찾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래서야 불운을 행운으로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없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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