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차로 남쪽으로 40분을 달려 도착한 로레알 쉐빌 연구개발(R&D) 센터. 여성들의 영원한 로망인 ‘미와 젊음’을 연구하는 글로벌 화장품 그룹 연구소치곤 초라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큰 반원형의 촬영장비가 눈길을 잡았다.
안내를 맡은 캐롤린씨는 “사람의 피부타입을 카테고리화 하는 장비”라고 소개했다. 반원형 중간에 트여진 공간으로 얼굴을 들이밀자 컴퓨터가 피부 분석을 하더니 ‘백인과 황인종 일부에서 나타나는 피부’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피부의 명암과 색깔을 중심으로 인류의 피부를 6가지 범주로 나누는데 현재 장비를 통해 3,000명에 달하는 여성의 데이터베이스가 축적돼 있다고 했다.
발길을 옮겨 2층으로 들어서자 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안내자가 버튼을 작동하자 탁자 아래에 숨겨져 있던 화장대가 위로 올라오며 모습을 드러낸다. 화장대 유리 뒷면에 설치된 카메라가 여성 개개인의 화장법과 습관을 꼼꼼하게 체크한다고 한다. ‘화장품 하나 만드는 데 별스럽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로레알이 별난 고집(?)을 부리는 것은 ‘미(美)에는 한가지 모델이 없다’는 신조 때문.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인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매년 매출액의 3.4%를 R&D에 쏟아 붓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이 17억유로(25조원)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간 8,000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것이다.
로레알의 전략은 물량 투입에 그치지 않았다. 화학자가 설립한 회사답게 화장품을 ‘과학’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40년간 120개 신물질 특허와 3만개의 전세계 특허 출원’, ‘세계 130개국 진출’, ‘초당 135개의 화장품 판매’ 등 열거하기에도 힘든 숱한 기록이 이를 입증한다. 심지어 마스카라 하나에도 17개의 특허가 포함돼 있을 정도다. 캐롤린은 “화장품은 생물학 화학 의학 등과 밀접하게 연계된 21세기 연금술”이라며 “특히 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레알이 선도하고 있는 분야는 인공피부. 로레알은 이미 1998년 세계 최초로 피부색을 결정하는 멜라노사이트, 면역체계를 관장하는 랑게스한스 세포 등을 구현한 인공피부(에피스킨) 개발에 성공했다. 인공피부 연구를 시작한 지 15년만의 쾌거였다. 사람의 가슴이나 배에서 피부세포를 떼어내 콜라겐에서 배양한 뒤 물 아미노산, 당분을 섞은 액체에 담갔다 떠내 열흘간 공기 중에 말리는 과정을 거친다. 여기다 자외선을 쬐면 노화된 피부를 얻을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처럼 여겨지지만 세포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성분과 혼합비율, 환경을 찾아 내기 위해 수십 만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1㎡의 인공피부는 인간의 피부와 똑같은 각질층과 면역체계를 갖고 있어 피부 노화 등과 관련된 실험에 이용된다.
로레알이 인공 피부에 개발에 나선 것은 유럽공동체에서 동물실험을 통한 화장품의 생산 및 판매를 금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부터. 유럽 의회는 내년부터 동물실험을 통한 완제품은 물론, 재료까지 생산을 금지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아직 인공피부 생산에 성공하지 못한 화장품 기업들은 유럽 화장품 시장을 포기해야 한다. 반대로 로레알은 막대한 시장을 수중에 넣을 수 있게 된다.
R&D의 또 다른 축은 인종간 피부노화와 탈모 연구다. 이는 핵심 전략인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ㆍ세계화와 지역화의 합성어)과 연관돼 있다. 이를 위해 2003년부터 시카고, 중국 등에 연구센터를 열었다. 이미 피부 노화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인종별 3D 피부 노화 모델을 만들었고, 최소 17개의 유전자가 대머리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인종간 모발의 차이를 보더라도 머리카락의 맨바깥 큐티클 층이 아시아인은 백인과 흑인보다 많아 직모가 많고 잘 부서지지 않는다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이를 통해 국가별로 성분을 달리한 샴푸 등을 판매하고 있다. 또 2006년에는 노화 방지 능력이 탁월한 프록실린이라는 성분을 만들었다. 유럽의 너도밤나무에서 추출한 이 성분의 특징은 세포간 활동을 활성화해 피부의 세포 재생 기능을 촉진한다. 기존 노화 방지 성분인 ‘알파하이드록시 애씨드’와 ‘레티놀’은 세포 자체에만 작용했다는 점에서 프록실린의 발견은 노화 연구에 신기원을 이뤘다. 소피에 연구원은 “로레알의 성장엔진은 전세계 16개 연구소, 13개 센터에서 이뤄지는 R&D”라며 “랑콤, 헬레나루빈스타인, 비오템 등 여성들을 사로잡은 화장품은 과학의 결정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파리=안형영 기자 truest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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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레알 '여성과학계 노벨상' 운영
여성 과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로레알-유네스코 세계 여성과학자상이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과학 연구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과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제정된 이 상을 받은 여성 과학자만도 50여명에 이른다.
올해는 김빛내리(아시아) 서울대 생명과학과 교수를 비롯해 리하드 알가잘리(아프리카·중동) 아랍에미리트대 소아과 교수, 아다 요나트(유럽)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 교수, 아나 엘고옌(라틴아메리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 의대 교수, 엘리자베스 블랙번(북아메리카)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생화학 및 생물리학과 교수 등 5명이 영예를 안았다.
김빛내리 교수는 유전자를 움직이는 RNA의 생성 과정을 규명했다. 마이크로 RNA는 DNA가 실행하는 단백질 합성과정의 중간자로만 여겨지다가 직접 유전자의 기능을 조절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과학계의 총아로 떠오른 분야. 김 교수는 마이크로 RNA가 세포 안에서 만들어지는 과정과 작용 기제를 완벽히 밝혀 냈다.
블랙번 교수는 노화 연구의 선두주자다. 그는 유전자가 들어 있는 염색체의 끝인 텔로미어가 나이가 들어 닳게 되면 노화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를 토대로 염색체 끝이 닳지 않도록 보호하고 고치는 효소인 텔로머라제를 발견했다. 아다 요나트 교수는 세포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인 ‘리보솜’의 3차원 구조를 밝혔다. 영하 185도로 낮추는 ‘극저온 결정법’으로 리보솜의 생성 과정을 알아낸 것.
아나 엘고옌 교수는 속귀에 있는 특정 청각 수용체가 시끄러운 소리를 줄여 뇌에 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소음을 들어도 귀가 멀쩡한 이유를 규명한 셈이다. 리하드 알가잘리 교수는 근친 결혼율이 높아 유전병이 많은 고국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유전병을 일으키는 15개의 열성 유전자와 새로운 유전병을 밝혔다. 또 아랍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선천적 기형증 등록 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안형영기자 truest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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